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Aug 02. 2018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그 언어들의 무게

영화 <쓰리 빌보드>(2017)와 나희덕의 시

한 손은 사랑에게, 다른 한 손은 죽음에게 건네려 한다.

아니다.

사랑과 죽음을 어찌 한 손으로 감당할 수 있으랴.

누추한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여린 손등은 죽음 앞에, 거친 손바닥은 사랑 앞에.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인의 말'에서


(이 글에 인용되는 나희덕의 시들은, 모두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그 언어들의 무게. 혹은 그 언어의 무게들


웃음기 없는 '밀드레드 헤이스'의 얼굴.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여기, 과거의 자신이 했던 말을 온몸으로 짊어진 채 오늘을 간신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영화 <쓰리 빌보드>(2017)의 주인공 '밀드레드 헤이스'(프랜시스 맥도먼드)다. 영화의 맨 첫 번째 신(Scene). 운전 중 어딘가에 차를 멈춰 세운 '밀드레드'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세 개의 옥외 광고판이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밀드레드'의 옆모습을 지나 영화는 곧장 그 광고판의 주인인, '에빙 광고사' 직원을 '밀드레드'와 조우시킨다.




"광고판에 쓰면 안 되는 말들은 뭐가 있죠?"


'밀드레드'의 물음에 담당자인 '웰비'(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하는 말은 대략, "비속어 빼고는 다 될 걸요?"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질문을 하긴 했지만 '밀드레드'는 이미 광고판 세 개에 각각 기재할 문구를 적어왔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자극적이고 충격적일 수 있는, 저 문구들을 '밀드레드'는 왜 적게 된 것일까.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RAPED WHILE DYING"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AND STILL NO ARRESTS?"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이 세 개의 문장 안에 '밀드레드'가 어떤 일을 겪었고 또 이 영화의 내용은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흘러갈 것인지, 모두 압축되어 있다. 또한 광고판 세 개에 나눠 적힌 문장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여기까지만 보고 '잔혹한 범죄로 살해당한 딸의 어머니와,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대결' 정도로 지레짐작했을 관객들도 있겠지만, (실제 영화의 전개가 그것만으로 이뤄지지도 않는다는 점을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첫 번째 광고판의 문구는 '밀드레드' 자신이 한 말이자, 곧 자신의 딸이 한 말이기도 하다.


차를 못 가져가게 한다는 이유로 엄마와 말다툼을 하게 된 딸 '안젤라'. 이 대화의 결론은 차를 가져가는 대신 걸어가라는 것이었는데, '안젤라'는 하필 집을 나서기 직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나간다. "걸어갈게, 걸어간다고. 걸어가다가 강간이나 당해버릴 거야!" 그런데 '밀드레드'도 이에 질 세라,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래, 걸어가다 강간이나 당해버려!" 강간 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히지 않고 있는 것과 이는 다른 층위의 것이다. 딸과의 다툼에서 지지 않으려고 받아치듯 내뱉었던 자신의 말이 '밀드레드'는 딸의 죽음의 씨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 분노, 이 슬픔, 이 울분은 딸을 죽인 '그놈'을 잡아주지 못하는 경찰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딸과의 마지막 순간에 모질고 거친 말을 해버린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포함하는 것이다.



고단한 날이면 내 혀에도 혓바늘처럼 돋던 그 말이

오늘은 화살로 돌아와 박히는구나


-나희덕 시 '상처 입은 혀' 중에서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에빙 경찰서장인 '윌러비'와 이야기 중인 '밀드레드'.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2.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하필 광고판이 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를 겨냥하고 있는 탓에 사람들은 '밀드레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아직도 못 잡았다'는 말은 적어도 '밀드레드'를 제외하고는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잊고 있었을 마을 사람들에게 그 일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은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말을 만들어낸다. '윌러비' 서장을 두둔하면서 '밀드레드'에게 "딱한 일이지만 광고판에 저런 내용을 쓰는 건 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윌러비'에게 "서장님 편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당장 광고를 내려야 한다고 '밀드레드'를 험담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안젤라 헤이스 사건'은 남의 일이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그만 해도 될' 일이다. '남의 일'이란, 내 일처럼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라 무심히 구경하고 관망하는 일이다.



그들은 더 이상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연극이 끝났으므로


-나희덕 시 '등장인물들' 중에서



'밀드레드'에게는 아들도 있다. 아들의 존재는 가족이어도 같은 사건에 대해 느끼는 온도가 같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게 만든다.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그러나 '밀드레드'에게는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오늘에서도 상처가 되고 분노가 쌓여가는 일이다. '로비'(루카스 헤지스)에게도 여동생의 죽음은 마찬가지로 그러한 일이다. '밀드레드'가 처음 광고판을 세웠을 때 그는 "하루에도 기껏 2초 정도나 잊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을 자꾸 상기시킨다"며 엄마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저마다 다르게 오고 가는 갖가지 말들. 넘쳐나는 언어들. 두 번째 광고판은 이 사건이 가족과 같은 당사자가 아니어도, 지역 사회에 속한 누구에게든 영향을 반드시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끔찍한 일을 겪은 누군가에게, 그 고통을 온전히 헤아릴 리 없는 타인이 어떤 말을 내뱉는지까지도.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도

유리창의 성에를 흘러내리게 할 수도

후욱, 촛불을 끌 수도 있지만

목숨 하나 끄는 것도 입김으로 가능해요

참을 수 없는 악취

몇 마디 말로

영혼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어요


-나희덕 시 '호모 루아*' 중에서

*Homo Ruah. 'Ruah'는 히브리말로 '숨결', '입김'을 뜻함.



지역 경찰들도 이 사건이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3.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상세한 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윌러비' 서장을 겨냥한 이 광고판이 불러일으키는 파장은 동료 경찰관인 '딕슨'(샘 록웰)에게 향한다. 또한 '딕슨'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은 결과적으로는 '밀드레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는 건, 이 사람들은 모두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 밖 현실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쓰리 빌보드>는 범죄를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영화인 것도, 공권력의 부패함 내지는 무능함을 꼬집는 영화인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무수히 입 밖으로 꺼내고 또 타인으로부터 귀에 들어오는 많은 말들. 넘쳐나는 언어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폐허가 걸어다니는 소리를

사람들은 잠결에 듣기도 하지요

폐허가 번져가는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 집을 열고 들어갈 용기도 없답니다


-나희덕 시 '눈먼 집' 중에서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밀드레드' 뿐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어쩌면 장기간 미제사건으로 남았을 수도 있고 마을 사람들은 언제 그런 사건이 있었냐는 듯 무심히 저마다의 일상을 지속했을지도 모른다. '밀드레드'가 마을 외곽, 아무도 쓰지 않는 낡은 광고판에 세 개의 문장을 내걸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참고 쌓고 견디고 견뎌왔을 그녀가 마침내 광고를 통해 온 마을 사람들에게 전한 자신의 언어는, 이내 잊힐 뻔한 사건을 상기시키고, '윌러비'와 '딕슨' 등 사건에 관계된 경찰뿐 아니라 '밀드레드' 자신까지 변화하게 만든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타인에게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줄 수 있다. 금방 아물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것들은 평생 씻어낼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타인을 울게 하지 않는다는 건 과연 불가능하리라.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진단하려 들지 않는 것. 일상의 무수한 언어들에 조금 더 무게감을 갖는 것, 즉 타인에게 거는 말에 조금 더 조심성을 기하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의 도끼는

때로 나무를 길 위에 쓰러뜨리나니

파르르 떨리던 잎사귀와 그림자의 비명을

여기 다 적을 수는 없겠네


그가 그린 어떤 길은 벌목의 상처를 지니고 있어

내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네

굽이치며 사라지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네


-나희덕 시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중에서



광고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인 '딕슨', 그리고 절대 광고를 내릴 수 없다고 맞서는 '밀드레드'.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개봉 당시, 영화 속 광고판의 내용을 가져와 CGV에서 만든 포토티켓들.




참고 참았던 '밀드레드'의 말(광고판)로 시작된,

결국 '말은 돌고 돌아 또 다른 무언가의 씨가 되고야 만다'는 이야기


영화 초반에 드러나는 '딕슨'의 언행은 딱 전형적이라고 간주할 법한 인종차별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윌러비'와 달리 '딕슨'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직자(Officer)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한다. 거의 무시하는 정도인데,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에게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마을 외곽의 옥외 광고판이 세 개인 것과, ('밀드레드'가 주인공이라고 앞서 언급하기는 했지만) 영화의 핵심 인물이 '밀드레드', '윌러비', '딕슨' 세 명이라는 점이 단순한 우연인 것만은 아니리라.


처음 '윌러비' 서장을 만났을 때의 '밀드레드'는 "나라면 8세 이상의 모든 남성을 검사해서 일치하는 DNA가 있다면 그 사람을 잡아 죽여버리겠다"라고 할 만큼 정말로 경찰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딸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무작정 경찰을 탓하기보다 끝내, 자신이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된다. 아직 범인의 실마리는 찾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하던 '윌러비' 서장에게, "당신이 계집애처럼 징징대는 동안 다른 여자가 죽어갈지도 모르는데 우선순위가 따로 있다면 나도 할 말이 없네요"라고 말했던, 본인의 의지로 말이다.



'밀드레드'는 거의 영화 내내, 이런 옷을 입고 있다.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불가능한 대화와 불충분한 대화

비에 젖은 창문과 빗물조차 들어올 수 없는 복도

우산을 든 손과 들지 않은 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과 시인은 함께 읽었다

비에 젖은 몇 편의 시를


-나희덕 시 '그들이 읽은 것은' 중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밀드레드'와 누군가의 차 안에서의 대화다. 두 사람은, 진작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꺼내기도 하고, 상대가 그 말을 하지 않았어도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환기시키기도 한다. 지난날 주고받았던 말들에 관해 돌이키기도 한다. 아직 '안젤라 헤이스 사건'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닌 상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깨달았을 것이다. 무심코 뱉은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 말들의 무게를 삶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쓰리 빌보드>의 광고판 세 개에 나눠 담긴 말들은, 각자의 층위에서 사건을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후, 영화의 화면은 암전 되지만 나는 믿는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진짜 이야기는,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는 이제부터 정말 시작된 거라고. 말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떠난 자는 떠난 게 아니다.

불현듯 타자의 얼굴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뒤표지로부터



영화 <쓰리 빌보드>(원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해외 포스터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


이전 17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영화의 의미를 발견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