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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24. 2019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영화의 의미를 발견하기

쓰는 만큼의 영화, 쓰인 만큼의 이야기


1. 영화가 문득 일상에 스며든 순간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하여 말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본 영화에 대해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를 기억한다. 지금의 내 기준으로 보자면 그때 쓴 문장들은 스스로 '글'이라 칭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영화의 숱한 대사나 장면들을 돌이키고,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동안의 내 생각과 기분이 어땠는지를 문자 언어로 끄집어내는 과정은 보이지 않지만 명명백백하게, 잘 티 나지 않지만 조금씩, 세계를 넓혀나갔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거나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으므로, 지금까지의 생에서 그렇게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 '영화와 함께한 기간'에 대해 이야기가 필요하겠다. 사람들과 부대끼기를 싫어했고 사교적이지도 못했던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지만(물론 지금도 혼자의 시간을 좋아한다)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쌓고 싶어도 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두렵고 낯선 감정 같은 것을 느꼈고 아무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대단해 보였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거의) 모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법한 주제나 관심사 하나에 대해 섭렵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소위 '덕질'에 대한 인식이 지금에야 좀 더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거의 유일한 관심사는 컴퓨터 게임에 있었다. 가장 오래 했던 게임으로 꼽을 수 있는 '던전 앤 파이터'는 '고3' 때 시작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그런 내게 영화는 다소 만만해 보이는 분야였다. 영화관에 자주 가지 않는 사람은 있겠어도 영화 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막연하게 영화를 투자, 배급하는 일에 호기심이 생겼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던 때 막연하게 책을 구입했다. 가령 『할리우드 영화의 모든 것』이나 『비즈니스로 보는 한국 영화 산업』, 『영화의 이해』 같은 제목의 책들. 우연히 들어서게 된 그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나는 조금씩 발자국을 남기고 더 많은 걸음을 옮겨나갔다.


영화 <그녀>(2013) 스틸컷



2. 돌아보니 영화를 살고 있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그리고 고맙게도, 영화에 대해 나름의 공부를 이어갈수록 영화라는 것이 단지 오락이 아니라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이자 사람의 삶에 밀접하게 자리한 하나의 문화로 다가왔다. (당시 CJ에서는 '문화를 만듭니다' 같은 광고를 하고 있었다) 영화를 투자하고 배급하는 일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어떤 영화를 (관객에게) 알게 해 주고 나아가 그 영화가 재미이자, 감동이자, 영감 같은 것이 되는 일로, 내게 다가왔다. 문과생이자 경영 전공자답게 영화의 기획과 제작에서부터 투자, 배급, 홍보 및 상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음은 물론 마치 내가 걸어야 할 길처럼 다가왔다.


뒤늦게 연합동아리 같은 대외활동들을 찾아 접하긴 했으나 학점이 좋지도 못했고 '스펙'으로 인정받을 만한 이렇다 할 것을 갖추고 있지도 못한 채 대학교 4학년을 보내던 나는 조금 초조해졌다. 뭐라도 하자. 뭘 해야 할까. 그러게 그 '뭐'가 된 게 바로 블로그였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려면 내가 영화에 대해 이만큼 관심이 있고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에 관하여.


영화 <휴고>(2011) 스틸컷



3. 혼자가 아닌 함께의 영화


시사회에 지인을 동반한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많다. 물론 주위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극장이 공공장소라는 최소한의 시민의식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임에도,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볼 때보다 혼자일 때 더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비공개 일기장에다 꽁꽁 숨겨두는 글이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내게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였어요. 당신은 어땠나요? 당신도 혹시 이 영화를 알고 있나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 장면 저도 너무 인상적으로 봤어요! 믿고 보는 감독님! 영화는 이야기다. 그리고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영화를 본 후 '재밌었다' 정도로 넘어가는 영화보다, 짧게라도 글을 쓰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영화는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되고, 나아가 하나의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좋은 영화를 본다는 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스승과, 연인과,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볼 때보다 보고 나서가 더 중요하다. 사유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현실의 근심을 잊기 위해 찾아보는 프랜차이즈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건 온당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신보다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할 것 같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문학동네, 2014)에서)


중간 과정을 조금 건너뛰자면, 막연하게 시작한 '영화에 대해 쓰기'는 결과적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불가능했으리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초보 블로거였던 나는 시간이 지나 모 영화매체에서 '객원기자'라는 직함을 갖고 조금 더 갖춰진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영화 홍보와 마케팅에 대한 강좌를 들었다. 졸업 후 첫 직장은 영화를 마케팅하는 곳이었고 두 번째 직장 역시 같은 일을 하는 다른 회사였다. 회사에서 하는 일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업무도, 포스터나 예고편 등의 선전물에 들어가는 각종 문구나 카피를 쓰고, 매일 언론매체에 전달되는 보도자료를 쓰는 것이었다. 그것 역시 성격이 조금 다른, 글쓰기였다. 일하면서도 글을 썼고 퇴근하고 나서도 글을 썼다. 영화에 대해 끼적거리는 사적인 취미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네이버 블로그에서 자연스럽게 카카오 브런치로 옮겨왔다) 그렇게 영화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내 삶에서 생업과 취미의 경계는 옅어져 갔고, 마침내는 양쪽의 구분이 그리 유의미하지 않을 만큼 하나가 되어갔다.'돌아보니 영화를 살고 있다'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2017) 스틸컷



  "<스탠바이, 웬디>(2017)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긴 글을 쓰는 게 어렵다고 해서 짧은 글을 쓰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쓴다는 건, 반드시 어려운 일이다. 문장을 짓고 단어들을 고르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자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인 이상 그는 계속 써야 한다. 노트에 펜이나 연필을 소리 내어 부딪히든 워드프로세서의 깜빡이는 커서를 움직이든 간에 말이다. 글쓰기가 어렵다 함은, 그것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쓰는 일에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노력을 아는 한,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웬디'(다코타 패닝)는, '계속 쓰는 사람'이다. 오로지 중요한 건 그녀가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이다. 공들여 쓴 시나리오 뭉치를 잃어버려도, 펜을 꺼내들 수 없는 환경에 놓여도, 누군가 자신의 글에 대해 칭찬하지 않아도 말이다. '웬디'가 쓰는 글은 시나리오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공고한 '스타 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이 영화에서 '웬디'가 어떤 행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는데, 그녀가 '계속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왜 하필 '스타 트렉'인지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 (...)"


(2018년 5월 28일에 쓴 영화 <스탠바이, 웬디>에 관한 글의 도입. 글 전문: (링크))


끝을 모를 불안과 떨림을 안고 맞이한 영화의 세계는 이제 내게 확신이 되었다. 불과 몇 년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화를 좋아할 것이고 영화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할 것이라는 확신. 앞으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 글쓰기의 대부분은 영화에 관한 것이 되리라는 확신. 동시에, 글쓰기가 단지 혼자의 취미이자 업이 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남기는 기록이 나 외의 다른 사람 혹은 세상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혼자의 '감정 배설'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배려하고자 노력하는 글을 쓰고 싶어 하게 되었다. 좋은 태도가 좋은 글을 낳고, 그러한 태도가 담긴 글은 읽는 이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여긴다.




4.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기, 곧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면 그에 앞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영화는 뭘 말하려고 하는 작품으로 다가왔는가. 배우의 연기는 어떻게 느껴졌고, 기억할 만한 장면이나 대사는 무엇이 있었는지, 촬영이라든가 음악, 편집과 같은 눈에 띄는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 마침내 '내게 그 영화는 어떤 영화였는가'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향한다. 물론 이것은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그냥 두면 잊히거나 휘발되어 버릴, 그러나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분명히 내가 하고 느꼈을 생각과 감정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며 보관하는 과정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 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글쓰기 경험은 삶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나인지 알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위즈덤하우스, 2017)에서)


다시 말해 과정은 영화의 결말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혹은 특정 장면에서의 특정 캐릭터의 행동이나 특정 장면에 숨은 소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헤치는, 영화 언어의 해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매주 수십 편의 신작 영화들이 쏟아지고 극장 밖에서도 OTT 서비스를 통해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에 웃고 우는지, 어떤 소재나 장르를 선호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찾아가고 알아가는 일이 된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서, 영화의 리뷰나 해석과 같은 콘텐츠도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훨씬 더 많이 소비되는 시대에 굳이 글을 쓰는 건, 그리고 굳이 누군가의 글을 읽는 건,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비효율적인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콘텐츠들이 자극처럼 쏟아지고 그중 정말 나를 위한, 혹은 내 취향에 맞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한 불필요하고 피곤한 일로 비칠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 특히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타자와 교감하고 연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글을 못 쓰는 사람일수록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편향이나 왜곡 없이 더 많이 사랑하라! 세상을 향한 애정이 충만할수록 글도 거침없이 쓸 수 있다.

(장석주,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중앙북스, 2015)에서)


그러나 '졸잼', '띵작', '핵노잼' 같은 축약어들은 저마다의 생각과 감정들을, 다른 어느 누구와도 결코 똑같을 수는 없을 나만의 느낌을, 나와 결코 일치하지는 않을 타인의 취향을, 단순화하고 획일화시킨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의 주관에 대해 가능한 구체적으로 풀어가는 일인 동시에, 다른 이의 삶에 대해 가능한 잘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가만히 앉아 내 생각을 글로 끼적거리는 일이 이 세상에 얼마나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물론 측정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내 생각을 문자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민하고 영화의 장면을 복기하는 일은 시간이 드는 만큼 차분하고 정제된 생각을 만든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결여 혹은 공감 의지를 포기하는 일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넘어 각종 범죄와 폭력을 낳는다고 믿는 나는, 당겨 말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몇 달 전부터 작은 모임을 시작했다. 4주간의 영화 글쓰기 클래스 '써서 보는 영화' @관객의취향. 5월반도 모집 중이다.



5. 당신도,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좋은 영화가 무엇이고 좋은 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공부하고 있고 여전히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그건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몰두해야만 간신히 찾아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영화에 대해 무엇인가를 끼적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글을 쓰고 싶은데 막상 두렵거나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 좋음의 이유를 잘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영화 글쓰기'라는 분야에 있어 나의 경험이 바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말로. 영화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큰 공부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도 이미 짧지 않은 글이 되었지만,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을 염두해 앞서 건너뛰어야 했던 그 중간 과정.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어떻게 나를 조금씩 바꾸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는지. 그것에 대해 당신과 함께, 조금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쓰는 사람'일 것이다. (2019.04.24.)



영화는, 쓰는 만큼만 내게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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