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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02. 2019

쓰는 사람,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팔월 첫 날이라는 것을 핑계 삼아 한 번 더 하는 생각

다른 때보다 요즘 스스로가 안고 있는 고민을 누군가를 만날 때 조금 더 터놓는 편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타인은 나를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에 있는 것을 잠시라도 밖으로 끄집어내는 동안 그것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매만지는 과정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혼자서만 생각하니 잘 몰랐는데,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가 내게 특정한 대답이나 조언을 해주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한 번 해보면 답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졌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어떤 것.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해답은 미지의 길에 발을 직접 놓아보아야만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대신 가거나 찾아줄 수 없으며, 나는 아직 걸음을 옮기고 있지 못하다. 그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아직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쓰는 일의 힘이란 이렇게나 무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이렇게 부를 노래가 많은데 내가 굳이 또 이렇게 음표들을 엮고 있어요'라는 요조의 노래 가사처럼 내가 쓰는 문장 역시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하'는 미문에 그칠지도 모른다.

걷기만 해도 땀이 나고 가만히 있어도 90퍼센트가 넘는 습도에 압도되어 쓰는 힘에 앞서 심신을 지탱하는 힘을 유지하기도 벅찬 계절이다. 스마트폰부터 시작해 보조배터리와 휴대용 선풍기, 그리고 블루투스 이어폰, 전자책 단말기에 이르기까지 가방 안에는 충전을 필요로 하는 물건들만 몇 개가 있다. 그것들의 LED가 점등되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 나는 무엇으로 충전해야 하나 생각하곤 했는데, 오늘은 과거 생각했던 것들의 흔적으로부터 그 동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막연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 한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일찍부터 남다른 꿈과 애착이 있었던 것도 아닌 내게, 영화에 대해 무엇인가를 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쓰다 보니 알게 된 건 창의성을 요하는 일에 능하지 못하며 '짧게 요약'을 싫어하는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을 만한 건 오직 어떤 것에 꾸준해지는 일뿐이라는 것이었다. 영화에 대해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더니 나는 영화에 대해 쓰는 사람이 되었고, 그러다 드물게 영화에 대해 '말할 일'이 주어지기도 했으며 영화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날로부터 영화에 대해 쓰는 사람이라 자각하게 된 날에 이르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있다. 왓챠가 알려주길 내가 본 영화들의 상영시간의 합은 2,646시간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각인시킨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으므로 내게는 아직 지금껏 쌓은 시간의 세 배에 상응하는 시간이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그 미지가 어떤 기지가 되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스스로 무엇에 대해 왜 쓰는지에 관해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다만 쓰는 일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 날 그 행위로부터 무엇인가가 더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한 번 더 갖기로 했다.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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