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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31. 2017

어쩌면 무용할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계속 써보는 일

무언가에 대해 쓰는 건 결국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은 자신의 저서에서 스스로를 매번 '문장노동자'라 소개한다. 작가 같은 말도 있는데 왜 굳이 그리 표현하냐 싶을 수 있지만, 실은 맞는 말이다. 책상 앞에 앉아 펜 혹은 노트북 키보드를 끊임없이 손과 부딪히며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일. 말 그대로의 육체적 '일'이다.


글 쓰는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지금 쓰는 글과 가장 근접한 형태의 글이 시작된 지점을 찾는다면 4년 전, 백지 상태에서 블로그를 시작한 때이다. 가고자 하는 진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막연하게 그것과 관련한 무언가에 대해 적어보자고 결심했던 것의 일환이다. 무엇에 대해 써야할 지 몰랐던 나는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범주화 했다. 영화의 경우 장문의 리뷰와 단문의 감상평, 명대사, 박스오피스, 영화 관련 뉴스 등 온갖 분야를 모두 다루고 싶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블로그가 아니라 언론 매체에 객원 에디터로 글을 쓰게 될 일이 생겼고, 마침내 영화가 단순 취미가 아니라 일이 되면서 그 범주는 자연스레 좁아지기 시작했다.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면,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일은 실상 그렇게 생산적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전체를 놓고 볼 때 영화를 볼 때 비평을 참고하거나 리뷰를 적고 사색하는 이가 이 시대에 과연 얼마나 있겠으며, 단순히 주변 지인, 친구 반응이나 평점 같은 거나 활용할 테지 글을 읽고 영화에 대해 생각하거나 정리하는 경우는 소수라고 단언할 수 있다. 특히 조금만 문장이 늘어도 결코 길지 않은 글도 길다며 스크롤을 내려버리는 시대에 소비형 콘텐츠가 대세로 취급되는 시대에 글을 쓰는 건, 효용을 따지자면 소용 없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의 가치는 그러니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쓰면 쓸수록 스스로가 잘 쓸 수 있는 것, 혹은 쓰면서 흥미를 느끼는 것, 쓰다 보니 관심이 생기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맞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그건 실상 영화 자체에 대한 글이 아니다. 그 영화를 본 '나'에 대한 글이다. 같은 컷과 신과 시퀀스를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가. 그 장면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왔는가. 여기서 '어떻게'는 그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거나 촬영되었는 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을 바로 '내'가 어떤 관점으로 감상했느냐를 뜻한다. 누적 관객 1,000명짜리 영화든 1,000만 명짜리 영화든 간에 내가 쓴 그 영화 리뷰와 다른 사람이 쓴 그 영화 리뷰는 똑같이 "인상적인 영화였다"라고 말하는 경우에도 결코 똑같지 않다. 같다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문화와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다르다는 것에서 나온다. 조금 바꿔 말하면 만약 <덩케르크>에 대한 감상과 리뷰를 적었다고 영화 속에 다녀온 모두의 체험은 제각기 다르다. 실은 한스 짐머의 어떤 음악, 하디의 어떤 눈빛은 편의 영화의 상영시간 안에서는 같은 지점에 있을 지라도 글에서의 표현은 그럴 없는 것이다. 특정한 주제나 소재에 대한 글이어도 결국은 그것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과 세계관을 담는 글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글은 그러니 나만의 글이다.


처음 영화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목적은 요컨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몰랐을 지 모르는) 좀 더 좋은 영화들에 대해 좀 더 많이 이야기 해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많이 읽히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면 그 글은 내 글이 아니라 타인의 글이 된다. 타인을 의식하고,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 내면이 아니라 외면이 주체가 되는 글이 된다.


문장이 모여 글이 되고, 글들이 모여 책이 된다. 그리고 책들이 쌓여 내가 된다. 멋들어진 글, 대중을 휘어잡는 문장, 그런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다. 쓰다 보면 반드시 무언가가 된다. 오늘 내 주변에는 무슨 일이 있었으며, 나는 무슨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누굴 만났고 지금 기분은 어떤지, 그런 것들은 글의 탁월한 소재가 되고 삶의 훌륭한 자산이 된다. 무언가에 대해서 글로 표현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 대해 표현하는 일과 같고,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 '쓰는 행위'의 가치는 저절로 충족된다. 이 세상의 모든 글은 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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