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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16. 2019

그 집 지하에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 <기생충>이 그린 한여름밤의 꿈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웃으니까 슬픔이다


영화 <기생충>은 빈자의 생활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지도, 부자의 생활을 힐난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한 곳과 다른 한 곳 사이의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여기 있다는 아픈 사실과, 누군가의 꿈은 끝내 거기 닿을 수 없으리라는 차가운 인식을 담는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면 그건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이 아니라 한 세계 안에 두 세상이 있는 사회 구조 자체를 향한다. 누군가를 전시하고 있다면 그건 자신의 세계 바깥의 다른 세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과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 모두에 해당한다. 그건 풍자가 아니라 처절하고 지난한 슬픔을 동반한 끝에 아주 간신히 입꼬리를 올리게 되는 모양의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결국 그에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채로 계절만 흘러가버렸음을 상기시킨다. 다시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포함해서. 그래서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영화 <기생충> 스틸컷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최우식)는 아버지 '기택'(송강호)의 모스 부호로 쓰인 편지를 '읽고'는 집에 돌아와 편지를 쓴다. 내레이션으로 전해지는 '기우'의 편지 내용은 요컨대 이제부터 계획이 생겼다는 이야기인데, 돈을 많이 벌어 대학도 가고 그 집을 살 것이니 그때까지 건강하시라는 것. 이 편지는 물론 부쳐지지 않는다. 집의 보안을 뚫고 지하실 수납장을 몰래 열어 지하의 지하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편지를 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지는 물론 일차적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을 향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기우'가 이것을 '기택'에게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였다. 부치지 못한 편지. <기생충>에 대한 궁리는 여기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기생충>의 첫 장면은 '기우'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느냐 편지지를 보고 있느냐, 그리고 계절이 여름인가 겨울인가의 차이 정도를 제외하면 마지막 장면과 거의 같은 구도와 방향으로 찍혀 있다. 반지하의 유일한 바깥과의 통로인 창문을 지나 앉아 있는 '기우'를 잡는 순서, 왼쪽 편의 작은 빨래걸이에 양말들이 뒤집혀 걸려 있는 모습 등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하강의 이미지로 찍힌 두 대목에서 관객은 그 둘이 같아 보이지만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도 알고 있다. 영화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기정'(박소담)은 이제 없고, '기택'은 기약 없는 '그날'이 오기까지 지하실에서 매번 목숨을 걸고 어두운 밤 계단을 슬그머니 올라와 냉장고를 열어야 살 수 있다.


이 일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계기가 뭘까. '민혁'(박서준)이 수석을 가져다주며 고액 과외를 제안했기 때문에? '기우'가 '기정'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택'과 '충숙'(장혜진)이 가세했기 때문에? 아니면, '문광'(이정은)이 그때 초인종을 눌렀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들 중 하나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나름의 답을 찾고 싶다. 먼저 말하자면 수석은 '로또 1등 당첨이 되리라는 희망'과 비슷하다. '상징적인 것'이라 함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도 가깝다. 복권을 구입하면서 꿈꾸는 대박은 극소수에게만 극도로 낮은 확률로 찾아오지만 그 확률이 제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막연한 희망을 준다. '기우'가 케빈이 되고 '기정'이 제시카가 되고 '기택'이 김기사가 되면서 '충숙'네 가족은 단순히 꿈을 꾸기를 넘어 이미 꿈이 반쯤 실현된 것처럼 거실에서의 술상을 즐겼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부자의 세계와 빈자의 세계


영화 <기생충>이 그리는 '빈자의 세계'와 '부자의 세계'는, 분명 같은 세상 아래인 데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곳이다. 알려고도 하지 않거나, 살면서 알아차릴 일이 없거나, 혹은 섣불리 알았다고 착각해버리는. '기택'네 가족은 애초 계획만으로 간단히 실현될 수 없는 꿈을 계획했고, 게다가 꿈이 이루어졌다는 착각을 너무 빨리 해버렸다. 이미 계획 자체가 엎질러진 상황에서도 다음 계획을 생각했다. '동익'(박사장)네 가족이 '근세'(박명훈)의 존재를 전혀 몰랐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 무지했듯 '기택'의 가족 역시 부자들의 삶이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거기에 오르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이것은, 두 가족의 희비가 엇갈렸다기보다 삶 자체가 비극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에 부치지 못하고 관객에게만 전해진 채 끝나는 '기우'의 편지는, 끝내 '기택'에게 닿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슬픈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 집 지하에서 당신이 본 건 무엇인가. '기우'가 건너편 산에서 본 집 현관 계단의 전등 불빛의 모스 부호는 지하에서 '기택'이 보낸 것이다. 그곳은 지하실 안의 지하실이고, 집을 처음 설계한 '남궁현자 선생'과 '문광'을 제외하면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곳이다. '동익'네 가족은 몇 년을 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공간. 현실 세계를 투영하는 영화가 하는 일이 일상의 세계 속 비일상의 세계, 즉 평소에 알지 못하는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면, <기생충>의 한 세상 속 두 세계는 그 역할을 정확히 한다. 어쩌면 가까운 곳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인 둘의 확연한 대비와 대조. 그 대비와 대조 자체가 일상이 된 세계가 <기생충>이 말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 이 가족의 꿈이 진짜였다면


그렇게 영화가 그리는 이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다 곁가지로 한 가지 생각을 더 했다. '기우 - 기정 - 기택 - 충숙' 가족의 '취업'이 진짜였다면? '기우'는 진짜 영어 과외 경력자이고 '기정' 역시 유학파 미술치료 및 미술 입시 강사이며 '기택' 역시 오랜 경력의 VIP 운전기사이며 '충숙'도 부잣집 가사도우미가 직업이었다면. 물론 이는 "민혁 오빠라면 이런 일 자체가 안 생긴다"라는 '기정'의 영화 속 말과 동떨어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혁'의 경제적 형편이 어떤지를 떠나 '민혁'이 진짜 과외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나는 '민혁'에게 이런 일이 생길 일이 없는 이유가 곧 그가 위장취업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처음 이 가정을 한 건 언제 들킬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가는 위장 취업 자체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인데, 만약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네 사람이 정말 '민혁'의 소개와 이후 알음알음으로 '동익'네 집에 모두 취업했다면. '문광'이 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지하실에서 목격했다 해도 그건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평소대로라면 가정부인 '충숙'만이 집에 있어야 했을 상황이지만 다른 이들이 거기 같이 있는 건 일종의 가족모임 같은 것이라 둘러댈 여지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의 약점을 쥔 건 오히려 '기택' 쪽이 된다. 초중반의 대화를 통해 있는 사실은 '기택' 가족 구성원 모두 범죄나 범법 행위에 대해 다른 의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만약 영화 <기생충>이 그리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희망적인 여지를 내포하고 있었다면, 나는 "위장취업이 아닌 진짜 취업이었다면 네 가족의 한여름밤의 꿈은 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반지하에 살면서 휴대폰도 끊긴 채 직업도 변변치 않은 이들에게 그런 '진짜 취업'은 가능할 리 없었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지 여부에 대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게 <기생충>이 슬픈 영화였던 이유는 그래서다. 선택이란 걸 할 수 없는 가족과,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의 너무나도 선명하고 극명한 대비. 이럴 때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에 사는 사람을 기생충처럼 여기며 '윤기사'(박근록)나 '문광'이 그랬듯,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고(박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들에게는 폭우가 쏟아진 뒤 가든파티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중요하지, 아래의 사람들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기우'에게 옷 예쁘게 입고 오라며 해맑게 카톡을 하는 '다혜'(정지소)의 순수한 무지가 그 자체로는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다송'(정현준)은 '근세'가 보낸 모스 신호를 읽지 못했다.) 돈이 없으면 '착함'을 포기해야 하는 세상보다 슬픈 세상이 또 있을까.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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