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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22. 2019

'우리들'이 사는 세계, 어디에나 언제나 '우리집'

영화 <우리집>(2018) 리뷰

영화 <우리집>(2018)의 세계에는 <우리들>의 '지아'가 있고 '선'의 가족들도 있다. 육교와 동네의 높은 계단, 분식집, 그런 풍경들을 영화의 시선은 무심한 듯 거기 여전히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영화의 시간은 계절의 온도를 스크린 바깥에까지 고스란히 전달할 만큼 인물 곁에 천천히 머문다. <우리집>의 '하나'(김나연)와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은, 문득 만나고 슬며시 가까워진다.


영화 <우리집> 스틸컷


<우리집>의 세계는 유년의 마음에 있어 모든 것이기도 하고 사소한 것이기도 한 많은 문제들을 들여다본다. 단지 철없거나 미숙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 대신 저마다 자신의 세상 안에서 당면한 중요한 고민일 수밖에 없고 쉽게 설명하기도 힘든 것들이라며 보듬는 방식으로. '하나'와 '유미'가 겪는 일들은 단지 우정 관계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가족사가 직접적으로 개입된다.


'하나'는 가족여행을 갈 수 있을까? '유미'는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의 발단이 되는 건 대체로 이런 질문들이겠지만, '하나'와 '유미'에게 일종의 미션을 부여하지만 <우리집>은 문제를 해결하는 영화가 아니라 마음을 보듬는 영화에 가깝다. 이 점을 부연할 수 있는 건 예컨대 '하나'의 집에 온 유진'이 '하나' 엄마의 노트북에 우유를 쏟았다는 걸 '하나' 엄마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같은 디테일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적인 갈등을 필요 이상 고조시키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집>은 자신의 서사를 영화적 우연 같은 것으로 포장하거나 옹호하지 않으면서 오직 '우리'의 이야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간파한 것처럼 아이들이 마음 쓰고 노력하는 과정에 전념한다.


영화 <우리집> 스틸컷(좌),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우)


한편으로 션 베이커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에서 '젠시'가 '무니'의 손을 잡는 마지막 신을 상기하면서, 나는 어떤 여정을 함께 나서는 '하나'와 '유미', '유진'의 뒷모습을 거기 포개었다. 리뷰를 써 내려가기 앞서 일기처럼 '유년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한데 '지켜지지 않는 것'이 곧 실패 혹은 좌절을 뜻하기만 할까. '내 잘못이 아닌' 문제에도 한없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고, 마음과 달리 튀어나오는 모난 말들로 상처를 주고받는 시기. 많은 유년의 일들은 쟁취보다는 낙담의 연속이기도 하다. 어찌할 수 없는 어른의 사정들,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우리집>은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같은 가르침을 주입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 속 세 사람 사이에서는 포옹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섣불리 위로하거나 무작정 보듬지도 않는다. 다만 동네 하나가 세상의 전부이고 그 세상이 쉽게 무너지고 다치기도 하며 또 어느 순간 절로 미소 지으며 밥을 삼키고 있고는 하는, 생의 한 단면을 꺼내어 볼 뿐이다. '당신의 유년에도 이런 순간이 혹시 하나쯤 있지 않았나요?'라며 가만히 어깨를 툭툭 치듯이. 오랜만에 만났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한 번 더 시작하고 싶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 암전된 스크린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스크린 안팎 모두에서 이것이 과거완료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 생각하게 되는 영화를. 정말 그렇다. 정말 그럴 것이다.



영화 <우리집> 메인 포스터

<우리집>(The House of Us, 2018), 윤가은 감독

2019년 8월 22일 개봉, 92분, 전체 관람가.


출연: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안지호, 최정인, 이주원, 정은경, 김준범 등.

(우정출연 - 설혜인, 최수인, 이서연, 강민준, 장혜진, 손석배)


제작: 아토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우리집> 스틸컷

(★ 9/10점.)


*영화 <우리집> 예고편: (링크)




덧붙이는 글 1: 유년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타임캡슐을 묻어보는 일, 뿔뿔이 흩어져도 우리 우정 변치 말자고 손가락을 거는 일. 편지를 부치고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으며, '아직은', '언젠가'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막연한 미래를 함께 상상해보는 일들.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거기 반드시 특별한 이유가 있지만은 않다. 단지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떤 기약은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한 일이 되어 있곤 한다. 비록 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지금 여기가 되지 못한 지난날의 무엇인가를 떠올릴 때면 슬픔보다는 미안함을 생각한다. 미안함은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지만, 이어서 생각하는 건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 '그때는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의 과정이 곧 자신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지난 순간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건 내게 무엇이 소중했고 지금은 또 무엇이 소중한지를 아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기장에는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웃고 울었던, 다정했던 얼굴들이 고스란히 있다.




덧붙이는 글 2: 박준의 시에서 두 대목을 생각했다.


마루로 나와 앉은 당신과 나는 / 희고 붉고 검고 하던 그 옷들의 색을 / 눈에 넣으며 여름의 끝을 보냈다 ('처서')


묵은해의 끝, 지금 내리는 이 눈도 / 머지않아 낡음을 내보이겠지만 / 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 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 // 언 손이 녹기도 전에 / 문득 서럽거나 /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 / 세상모르고 먹을 것입니다 ('좋은 세상')


영화 <우리집> 스틸컷

*프립 소셜 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링크)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9월반: (링크)

*영화 글 이메일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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