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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3. 2018

당신에게도, 지난날 사랑이 있었다

<인어공주>(2004)

영화 <인어공주>의 블루레이를 보면서.
영화 <인어공주>의 블루레이를 보면서.
영화 <인어공주>의 블루레이를 보면서.


그 어떤 달콤하고 아름답고 때로는 아득할 만큼 환상적이게 들리는 말이어도, 이 시간은 결국 유한하고 끝을 향해 어디로든 어떻게든 나아가고만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한다. 다만 할 수 있는 말은, 있을 수 있는 동안 함께이겠다고 소포를 건네주는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이 순간도 과거가 될지언정, 여기가 현재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사람의 흠결을 그림자라고 여기지 않고 곁에 다가가 빛을 만들어주는 것. 누군가의 생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말은, 그럴 때 가능하다. 한 번 지나간 계절은 다시는 똑같은 계절로 돌아오지 못하지만, 그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왜 그걸 모르냐고 물음을 하기 전에, 내가 아는 걸 당신도 같이 알게 되면 더 좋겠다며 그저 가만히 손 내미는 것. 혹은, 말이 필요하거든 내 것을 가져다 쓰라고 곁을 비워두는 것. 저마다의 다른 언어는 그렇게 문득 서로 만난다. 사랑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생명이 다할 걸 알면서도 언젠가 가슴속에 품고 살 동화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것이어서. 삶은 죽어도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면 죽지 않는다. 다른 사람한테는 모르는 척 없는 척 해도, 내 마음만은 속에서 추억하고 있을 그런 이야기.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소풍은 짧았네

뜻밖의 사랑이 시작되자 인생은 짧지 않았네

나는 인생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끝이 없었네


(중략)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어 이야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물론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전설적인 인어공주는 사랑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깊은 바닷속 마녀의 것이 되어 불온하고 위험한 노래가 되었다. 그것이 세상에 떠도는 인어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나의 인어 할머니는 생전에 유별난 이야기꾼이었고 수줍은 시인이었다. 할머니의 힘은 빌려, 나는 세상 사람들의 귀에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인어공주의 목소리, 인어공주의 저 오래된 침묵 속으로 들어가보려고 한다. 사랑에 대해서라면,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만이 아니라 한때는 사랑을 말하느라 목이 쉬기까지 했던 나도, 그리고 당신도, 말할 수 있었던 것보다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언제나 더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김행숙, '나의 인어 할머니', [사랑하기 좋은 책], 중에서)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


영화 <인어공주> 블루레이를 보면서. 진국이 연순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겠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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