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2018)
<명당>(2018)은 소재에 끝까지 충실한 영화였다. 굳이 비교하려고 하지 않아도 (같은 제작사의) '역학 3부작'이라며 스스로 엮이고 있으니 언급하자면 <관상>(2013)은 주인공 혹은 화자의 직업이 관상을 보는 사람이었다는 걸 제외하면, 영화의 흐름 자체는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큰 권력 앞에 무참하고 무력하게 짓눌리는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고 해도 될 것이다. 반면 <명당>은 어쨌든 계속해서 '명당'에 관한 영화였다고 칭해볼 수는 있겠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뒤늦게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고 있는 탓에 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조승우와 유재명이 영화 <명당>의 한 프레임에 잡히는 내내 영화와 드라마 사이를 아슬하게 쏘다녔다. 그건 그만큼 두 배우의 좋은 연기 덕에 캐릭터가 살아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어느 작품에서의 연기가 깊은 인상으로 남아서 다른 작품을 볼 때까지도 그게 떠오른다는 것일 테니까. 다만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비밀의 숲]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땅의 운명을 가늠하는, 아니 땅에 머물거나 놓이는 사람의 명운을 가늠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저 소재에 그치고 익히 예상할 수 있을 만큼의 권력 암투 혹은 치정에 얽힌 드라마로 흘러가지는 않을는지, 영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결말을 미리 점쳐보곤 했다. 그리고 후반부에 벌어지는 어떤 사건을 짐작하는 것 자체는, 지성이 연기한 인물이 흥선군 '이하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명당>의 이야기는 인간사를 꿰뚫는 나름의 통찰을 담고 있다고는 할 수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현생의 무게도 버거운데 자신이 죽고 나서의 후대의 복까지 걱정해 이곳저곳 터를 옮겨 집을 잡고 조상의 묘까지 이장하는 사람들과,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집이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웃돈을 대가로 제시하자 바로 넘어가는 사람들, 터가 좋은 곳이라 하자 제값을 훨씬 웃도는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무리하게 집을 사기 위해 성화인 사람들. <명당>은 그러니까, 조선 말엽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상상력을 더해서, 자신이 머무는 곳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보기보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었던 사람들의 명암을 그려낸다.
흥선군의 아들이 훗날 철종 사후 고종으로 즉위하고 흥선군은 곧 대원군이 된다는 걸,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극 중 한 지관으로부터 '왕을 배출할' 숨은 땅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알게 되는 그 땅에 대한 정보에는 왕을 배출하지만 2대를 미처 넘기지 못하고 왕조를 빼앗기게 될 운명이라는 언술도 포함돼 있다. 흥선은, '상갓집 개'로 멸시받으면서 허울뿐인 왕족으로 살아온 자신의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 양날의 충고를 듣지 않고 끝내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다. 한편 천년을 누릴 가문의 권세를 위해 같은 땅을 노렸던 김씨 세력 역시도, 모종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관상>의 '관상가'보다는, 그래도 <명당>의 '지관'이 사건의 추이를 결정짓는 데 있어서나 영화의 캐릭터로서의 주체적인 역할로 보나 더 눈여겨볼 만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풍수지리와 연관해 '땅에 얽힌 세상만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초, 중반의 연출도 비교적 좋다. 다만 여러 캐릭터들 간의 관계와 그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감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건 연출보다는 결국 시나리오다.
'박재상'(조승우)의 과거사는 거의 생략한 채 현재의 상황과 서사에 몰두하는 영화의 선택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중반 이후의 큰 변수가 되는 것은 김씨 세도가의 수장인 '김좌근'(백윤식)의 아들 '김병기'(김성균)의 행동이다. 그에 따라 초반부 제법 막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악당처럼 보이던 '김좌근'의 존재감은 오히려 퇴색된다. '헌종'(이원근) 역시 그가 어리고 무기력한 비운의 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내내 영화에서 겉돈다. '초선'(문채원) 역시 기방의 수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정작 뚜렷한 입지를 구축하지는 못한다. '명당'에 얽힌 인물들의 군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감흥을 끌어내지는 못하고 여러 인물들이 각자 만들어내는 단상만을 남긴다. 아주 길지는 않은 영화의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신 이후의 한 대목은 여운을 주기보다는 다소 사족처럼 느껴진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대극 영화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명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내게는 그 대단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명당>은 속까지 꽉 찬 영화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명절을 겨냥하고 개봉하는, 그저 모든 걸 적당한 정도로만 갖춘,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흔한 영화의 하나로 내게는 기억될 듯 하다. (★ 6/10점.)
<명당>(2018), 박희곤
2018년 9월 19일 개봉, 126분, 12세 관람가.
출연: 조승우, 지성, 백윤식, 김성균, 문채원, 유재명, 이원근, 박충선, 강태오, 태인호, 김민재, 손수아 등.
제작: (주)주피터필름
배급: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작 (2018년 9월 12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명당> 예고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