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2018)를 보고
"죽음에 이르게 되더라도 존재는 반드시 어딘가에 머무는구나 싶어요.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와 함께했다는 감각은 영원히 남잖아요."
(임경선, '안경' 중에서,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위즈덤하우스, 2018, 57쪽.)
극장에서 같은 날 <너의 결혼식>을 관람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역시 내게는 재난 영화이기 이전에 사랑에 관한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짧은 감상평을 남기고는 조금 더 천천히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려 했는데, 최근 읽고 있는 임경선 작가의 소설의 어느 한 대목에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돌이키기로 했다.
살던 곳을 떠나 타히티 섬에 온 '태미'(쉐일린 우들리)는 마치 <맘마미아!2>의 젊은 '도나'(릴리 제임스)를 연상케 한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외딴섬에 온 것도 그렇지만, 그 섬에서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것까지 두 캐릭터 사이에 어느 정도의 유사성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리처드'(샘 클라플린)와 빠르게 가까워지면서 '태미'와 '리처드'는 어느덧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고, 영화의 원제인 'Adrift'의 사전적 의미처럼 요트를 함께 타고 떠난 두 사람의 여정에는 예기치 못한 재난이 찾아온다. 그러나 생사의 기로에 선 거대한 파도 앞에서, 두 사람은 함께였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만난 허리케인으로 두 사람이 탄 배는 뒤집히게 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끝에 정처를 알 수 없는 표류가 시작된다.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이후 전개는 <라이프 오브 파이>(2012), 혹은 <그래비티>(2013), 혹은 <마션>(2015)의 그것과 일부 닮아 있다. 자칫 포기해버릴 수도 있을, 아니 적어도 몇 번은 체념한 채 생사의 경계를 체험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바다에서든, 우주에서든, 머나먼 행성에서든 '생의 의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에는 후반부 예기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관람 전 영화의 바탕이 된 실화에 관해 상세하게 찾아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 때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느냐 자체가 감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있기 전 '태미'와 '리처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5개월 전의 시점과, 그리고 재난이 일어난 시점을 여러 차례 오가는 영화의 전개는 처음에는 왜 그런 방식을 택했을지 갸웃하게 만드는 구석도 있다. 그러나 쉐일린 우들리와 샘 클라플린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케미스트리와, 덩달아 축적된 두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가 맞물려 후반에 이르면 점차 플래시백의 빈도는 줄어들고 영화가 말하고자 한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완성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이긴다. 사랑과 삶은 언제나 그렇다.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사건이 닥쳐오더라도, 수평선 너머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은 능히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항해를 이어갈 수 있게 목소리로 다가온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지만 나에게만은 분명히 존재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의 포기할 뻔했고 주저앉기 직전이었던 어떤 삶을 다시 살아보게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징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이 삶에서 믿어보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