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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7. 2015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집

명절이 되어서야 찾은 이곳

케이블에서 방영해주는 <군도: 민란의 시대>(2014)를 본다. 작년 여름 시즌의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으니 딱 좋은 밤이다. 그러나 더 좋은 건 여기라는 공간의 안온함 자체일 것이다. 아들 왔다고 삼겹살에 소주부터 꺼내는 아빠와, 내 서울 라이프와 근황을 캐는 엄마와, 부모님 드릴 선물을 한가득 사서 온 형. 나를 기다린 것처럼 그대로인 내 방과, 오후로 거슬러 영주에 발을 딛었던 순간부터 머릿속에 생동하게 그려지는, 서울의 구 하나보다도 작은 이 동네의 지도. 집까지 택시를 타는 대신 걷고 싶어지게 만든 여기의 이 공기.


지난번에 왔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아빠의 새 차, 새로 교체한 거실 형광등을 빼면, 어릴 때는 온 친척들이 다 모이던 명절이 점차 가족끼리의 조촐한 휴일이 된 것을 빼면, 대부분 그대로다. 집. 이 느낌이구나. 이런 게, 식구.


내가 서울로 떠나고도 거의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 그대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던 이 공간에서, 21년을 산 집에서, 이제 부모님이 퇴직 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식의 연애와 결혼 시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사실 집과 가족과 이곳의 모든 것들은 조금씩 변하거나 흘러가거나 늙어왔던 것 같은데 나만 그대로였다, 이 집이 계속 이 집일 것처럼. 그게 '영주 집'과 '서울 집'을 의식적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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