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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06. 2015

어둠을 피하고 싶었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아마도 겨울과 봄 사이였거나 봄이었겠다. 잠이 드는 것이 싫었다. 혹은 잠을 자야 하는 것이 종종 무서웠다. 그럴 때 간편하게 내가 택한 것은 심야영화였다. 집에서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극장이 있으니 가볍게 밤공기를 마실 수도 있고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있는 방편이었다. 적어도 스크린에서 무언가가 내내 쏟아지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머리를 헤집을 겨를이 없었다. 무엇을 채워야 채워지는지도 몰랐지만 가끔은 영화 한 편만으로는 그 밤이 채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심야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기로 했다. CGV신도림의 인근에 CGV구로와 CGV영등포가 있다. 23시 영화를 보고 곧바로 조금 걸음을 재촉하여 01시 10분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식의 방법이 가능했다. 두 번째 영화를 보고 극장 밖을 나오면 오전 3시가 조금 넘었다. 그러고도 잠을 자기 싫어 타임스퀘어 인근의 24시간 카페로 향했다.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흔한 커피 맛조차, 드문드문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심야 카페의 사람들을 가끔씩 흘끗 구경하다 보면 제법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새벽이 빨리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잘 읽히지 않는 책을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굳이 커피 같은 것을 마셔야만 밤을 깨어 있는 채로 보낼 수 있는 체질은 애당초 아니었다.


문을 닫지 않는 그 카페의 하루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것은 매장 전체를 샅샅이 훑는 청소기 소리였다. 고개가 의자 뒤로 꺾인 채 코를 골던 손님도 그 소리면 잠에서 깼다. 나는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덩달아 기지개를 켰다. 첫 지하철이 다닐 무렵, 지하철을 타지 않고 일부러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편의점을 거친 캔 맥주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같은 것이 손에 들려 있었고, 영등포역에서 신도림역까지 걸어오는 그 길의 그 새벽에는 언제나, 좋은 데 있으니 자고 가라는 홍등가의 호객꾼의 눈길이 서 있었다. 남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한 시민도 걸음을 재촉했고, 안방이 아니라 차가운 길바닥을 집으로 착각한 취객도 종종 누워 있었다. 잠이 드는 것이 싫어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뛰쳐나왔던 그 기분은 잊은 채, 단순히 새벽 공기가 좋았고 새벽의 그 유쾌하지 않은 풍경도 제법 자연스러웠다. 대체로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할 때 그제서야 잠자리에 누웠다. 나답지 않게 누운 후 빠른 시간 안에 잠이 들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나는 가끔 두 편의 심야영화로 하루의 끝과 시작을 맞았다. 어쩌면 방의 불을 켜지 않으면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과 적막이 싫었던 것이며 때로는 집이라는 공간이 까닭 없이 낯설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잠을 자야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인데, 잠을 잔다는 것이 싫을 수 있는 것도 사람이었다. 그 계절의 나는 다른 사람 같다. 불과 몇 달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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