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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03. 2015

흘러갔기에 흘러오는 달

10월이었다. 각별히 여기는 사람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기를 좋아한다. 종종 쓰는 일기에 그에 관한 언급을 간접적으로 하거나, 사진을 폴더별로 구분하거나 메신저로 그가 했던 말 중 기억할 만한 대목을 캡처해둔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다. 한때 가깝고 소중하게 지낸 이가 있었다. 한때라기엔 그리 짧다고 볼 수는 없는 기간을 알고 지냈는데, 깊은 고민을 나누고 커피나 술도 종종 마시며, 자주 닿았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멀어졌는데, 그러고 나서도 스마트폰에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의 일부는 얼마간 남아 있었다. 또 그러다가 시간이 얼마만큼 흐른 뒤, 작은 실수로 기기 전체를 초기화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기록 중의 일부가 유실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느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것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때 알게 되었던 노래 중 한 곡을 듣는데 뜬금없이 지난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 택시를 잡아 보내며, 오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때가 있었다. 책을 선물하며 포스트잇에 짧은 메모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내가 갖고 있는 ‘가까웠던 사람’의 기준 중 하나는, 아무런 단서 없이도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목소리나 취향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느냐 하는 거다. 기간의 짧고 오랜 것의 정도는 어느 정도는 유관하나 반드시 유관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그냥, 그때 그런 사람이 있었고 어떠한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생각이 난다. 어디 가서 기억력 나쁘다는 소리 잘 안 듣는 나인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다. 가까워지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연해지고, 어떤 사람은 그저 웃음이 나고, 어떤 사람은 눈물이 나곤 한다. 어쨌든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거치고 지나 온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또 다시, 꽉 찬 달에 조금씩 그림자가 생기는 모양을 보게 되는 요즘이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지금 내가 곁에 있는 모든 당신과 당신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동안에도. 그리고 이 계절이 너무 춥지는 않았으면 한다. 흘러서 고마운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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