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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03. 2015

쓴 커피

쓴 맛의 커피를 선호한다. 커피맛에 민감하거나 각 커피전문점 브랜드별 맛의 차이를 예민하게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신맛과 쓴맛 정도는 구별하는 식이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커피 외 우유 등 다른 것이 혼합된 음료 특유의, 입에 남는 뒷맛이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피맛도 모르면서 깔끔하게 넘어가는 커피맛에 이끌렸던 것이다.


음료를 손에 받아들고 처음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온몸으로 향이 파고든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본다면 "저걸 무슨 맛으로 마셔" 싶을 법 하다. 그러나 잠깐의 그 쌉싸름함이 지나고 나면 마치 내 스스로가 어른이 된 것처럼 알 수 없는 우월감에 빠지기도 한다. 쓴맛은 차차 익숙해지고 몸에 길들여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한약을 한동안 먹었던 경험을 떠올린다. 아무리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만 이걸 대체 어린 내게 먹으라는 건가 싶고, 또 한약을 먹는 동안 피해야 하는 음식은 어찌나 많은지. 그런데 한약의 복용분을 다 먹어갈 때쯤에는 그게 줄어가는 것이 묘하게 아쉬운 것이었다. 커피도 그런 모양이다. 나도 처음에 라떼나 초콜릿 음료에 길들여졌다면, 커피의 이 쓰지만 깔끔하고 고유한 맛을 몰랐을 테다. 쓴 커피는 더 이상 쓰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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