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Dec 01. 2015

순간을 순간으로 지나치지 않을 수 있기를

언젠가 이른 아침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눈을 뜬 것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채비를 마치고 집 앞에서 택시를 탔다. "청량리역이요, 제가 6시 40분 기차를 타야 하거든요, 조금 서둘러 가주시겠어요?" 이 새벽부터 다들 어딜 그리 바삐 가는지 종종 차는 막히고 신호도 걸리고, 택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바깥 풍경을 제대로 살필 여유조차도 사치였다. 기사 아저씨도 조급했던지 이리저리 빠른 길로 향하느라 애쓰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게 그 상황의 내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강변북로에 진입하였습니다, 서빙고역입니다, 주요 장소에 들어설 때마다 울려대는 내비게이션의 기계음이 오히려 더 피를 말리게 했다. 역에 접근할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그 예쁜 야경조차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역 앞에 택시가 정차했고, 거스름돈을 받는 시간마저도 아끼기 위해 카드로 허둥지둥 계산을 하고서는, 기차를 타는 플랫폼까지 전속력으로 뛰었다. 평소에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거나 해도 절대로 뛰지 않는 내가 땀이 날 만큼 뛰었으니, 화급을 다투는 일이었던 것이다.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플랫폼에 당도하여 시간을 보니 바로 6시 40분이었다. 승차권에 표시된 내 자리에 앉고 겨우 몇 초가 지났을까,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주에 있는 부모님과 만나 형이 사는 부산에 갈 예정이었던 그날의 일정은 그렇게 무사히 소화할 수 있었다.


조금은 이르지만 올해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지금의 이 1년을 돌아볼 때, 보통 연인이나 가족, 주변의 소중한 지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날 아침 택시 기사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도, 차의 번호판이라도 기억해 둘 순간조차 없었지만 내 스물여덟의 태양이 빛날 수 있었던 순간들에는 그렇게 찰나의 순간을 지나 쉽게 흐릿해지는 많은 이들도 함께였다. 나는 고마운 것에 조금 더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고, 달려갈 곳에 조금 더 빨리 달려가고 싶은 곳이 생겼고, 치열해질 만한 곳에 조금 더 치열해질 줄도 알게 되었다. 열두 번째 달과, 그리고 새로운 첫 번째 달에는 나를 나이게 해주는 모든 존재와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보내지 않을 수 있는 여유도 조금 더 겸비했으면 한다.


달빛을 가만히 올려다볼 수 있는 무르익은 밤처럼.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쓴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