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2018)
'곰돌이 푸'가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게 되지." 이건 사실 어린 '크리스토퍼 로빈'이 했던 말이다. "네가 100살이 되면 그때 난 몇 살이지...?"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2018)는, 그리 말하는 영화로 들렸다. "소중한 건 늘 이 안에 있어,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네 마음속." 꿈은 그냥 꾸어지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꿈은 그냥 꾸어진다. 꾸어볼 마음만 있다면 그 즉시 나를 찾아오는 바로 그런 상태로, 꿈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부터 자신이 찾아지기를 기다리면서.
기억이 맞다면 21세기 들어 디즈니의 실사 영화(Live-Action) 프로젝트는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가 시작이었다.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2013), <말레피센트>(2014), <신데렐라>(2015), <정글북>(2016), <거울나라의 앨리스>(2016), <피터와 드래곤>(2016), <미녀와 야수>(2017)를 거치며 그동안 이 세계가 보여준 것들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이었던 것을 실사로 '옮겨놓은' 것에만 지나지는 않는다. 어떤 기억은 과거에 그것이 있었음을 현재에 와 다시 상기할 때, 더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다.
자신이 가졌던 것, 자신이 경험했던 것, 자신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삶을 헛되게 보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삶에서 숙제처럼 해치워야 할 일들이 너무도 산적해 있을 때, 그래서 도저히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은 생길 기미조차 생기지 않을 때. '곰돌이 푸'는 그래서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다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딘가가 날 찾아왔다"라고 말하면서, 시치미 떼듯 "배고프다"라고 말하면서. 어쩌면 우린 순수히 동심을 회복하기엔 너무나 멀리 와버린 것인지 모르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일 테니까. 그래서 판타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렇게나 쉽게 내 지난날을 생생하게 추억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
원작 '곰돌이 푸'를 잘 알지는 못하는 터라 나는 성인 '크리스토퍼 로빈'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를 보는 내내 그의 전작 중 하나인 <빅 피쉬>(2003)를 떠올렸다. 거기서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순수한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불가능했다. 이건 현실과 비현실을 적당히 타협하는 일이 아니다. 시름 따위는 잊으라는 달콤한 유혹도 아니다. 꿈꾸는 어른이 되려면 거짓이라도 믿어보아야 하는 것인지도. 거기에, 진실 말고, 지난날의 진심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 8/10점.)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Christopher Robin, 2018), 마크 포스터 감독
2018년 10월 3일 국내 개봉, 104분, 전체 관람가.
출연: 이완 맥그리거, 헤일리 앳웰, 짐 커밍스, 마크 게티스, 닉 모하메드, 브래드 거렛, 피터 카팔디, 브론테 카마이클, 소피 오코네도, 토비 존스 등.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