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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2. 2018

'판타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영화 <펭귄 하이웨이>(2018)

판타지가 우리에게 하는 일이란, "어릴 때 꿈꾸고 상상하는 것들은 다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들이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에만 가능한 (때로는 철없는) 것들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왔고 네가 기억하는 한 마음속에서 그 세계는 언제나 살아 있을 거야"라고 가르쳐주는 일이다. 그것이 덧없는 환상이 아니라고, 잊히더라도 당신의 세계는 하나가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를 그저 거대한 물음표로 보면 돼요."(장 자크 상뻬)


영화 <펭귄 하이웨이> 스틸컷


'아오야마'는 경험하는 모든 일에 대해 탐구하고 호기심을 (작 중 등장하는 여성의 가슴에 대한 '연구'는 다소 과도하다 느껴질 만큼) 놓지 않는 '소년'이다. 자신이 어른이 되기까지 남은 날짜를 계산하고, 매일 발견하고 생각한 것들을 노트에 기록하며 자신의 방문에는 '연구소'라는 팻말도 걸어두었다. '아오야마'에게는 우선 '치과 누나'가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연구의 조력자가 되기도 하는데, <펭귄 하이웨이>(2018)는 '아오야마'가 사는 마을에 그 기원과 출처를 알 수 없는 펭귄 무리들이 목격되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지방에 사는 펭귄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불분명한 탓에 '아오야마'는 일종의 탐사대를 꾸리며 영화의 초반부는 가벼운 톤의 수사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치과 누나'가 펭귄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오야마'의 연구로 드러나면서, 작품의 전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얼핏 소년의 첫사랑 영화처럼 보이려 하다가도 <펭귄 하이웨이>는 내게 '판타지' 그 자체에 대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이를테면 팀 버튼의 <빅 피쉬>(2003),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 같은 실사 영화들을, 혹은 애니메이션 중에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 같은 작품을, 그 영화들의 결은 다르지만 <펭귄 하이웨이>를 보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펭귄 하이웨이>의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저 펭귄들이 진짜로 극지방에서 건너온 펭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펭귄'이라는 관념 자체가 변화하지는 않는다. 결국 판타지란, 인식의 문제이리라.


영화 <펭귄 하이웨이> 스틸컷
영화 <펭귄 하이웨이> 스틸컷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에게 곧 물음표로 다가온다. 물음표의 크기와 모양은 저마다 너무나 달라서, 어떤 물음은 유년기를 보내는 내내 해결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물음은 금세 흥미를 잃고 시시해져 어느덧 그 존재마저 잊히곤 한다. 물음표의 생명력을 결정짓는 건 스스로가 지닌 호기심의 크기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주변 인물의 영향이 크다. 이를테면 '아오야마'의 아빠는 그가 하는 '연구'를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조언까지 해주는 인물이다. '아오야마'가 '호기심 소년'으로 자라난 건 상당 부분 그의 영향 덕분일 테다. 만약 '아오야마'의 부모가 강제로 학원을 다니게 한다거나, 학교 공부 외의 다른 것들을 일체 하지 못하게 했다면 <펭귄 하이웨이>의 모든 일들은 (작품을 벗어나는 가정일 뿐이지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판타지로 돌아와서. '치과 누나'는 대략 이런 말을 한다. 잊지 않는다면, 우린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펭귄 하이웨이>에서 저 펭귄으로 인한 모든 소동이 지나고 난 뒤, 마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러나 적어도, '아오야마'와 그 여정을 함께했던 이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이런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린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함께 겪었어." 다른 영화의 리뷰를 적으면서 이렇게 마무리한 적이 있다. 꿈꾸는 어른은, 끝내 이 세상을 크게 만든다. 문장 하나를 덧붙이자면 그는 아이일 때도 큰 꿈을 꾸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오야마'는 철없던 시절을 지나 꿈꾸는 어른이 될 것이다.



영화 <펭귄 하이웨이> 국내 메인 포스터

<펭귄 하이웨이>(ペンギン・ハイウェイ, Penguin Highway, 2018),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

2018년 10월 18일 (국내) 개봉, 118분, 전체 관람가.


(목소리) 출연: 아오이 유우, 키타 키나, 쿠기마야 리에, 한 메구미 등.


수입: (주)미디어캐슬

배급: (주)NEW


영화 <펭귄 하이웨이>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작 (2018년 10월 15일, 메가박스 동대문)

*<펭귄 하이웨이>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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