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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31. 2018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겐 현재형인 역사에 관하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

한국전쟁 당시 폴란드로 가게 된 고아들이 있었다는 실화 정도만을 대강 찾아보고 갔다가,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에서는 그 이상의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났다. 모든 아픔과 슬픔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60년도 지난 일들에 대해 지금을 사는 나, 혹은 우리로서는 벌써 먼 과거의 일 같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여전히 현재다.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다는 건, 바로 그 누군가에게 바로 그 사랑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어쩌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고 잊힐 수 있었던 먼 나라에서의 이야기는 서역 땅에 묻힌 동양인 아이의 무덤에 얽힌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된 어떤 사람에 의해 세상에 뒤늦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장 최근 개봉한 브래들리 쿠퍼 감독의 <스타 이즈 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해외에서야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국내에서는 배우가 직접 연출을 도맡은 사례가 아주 흔하지는 않다. 근래 들어서야 하정우, 유지태, 구혜선 등 감독에 도전하거나 활동을 이어가는 배우들을 조금씩 볼 수 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역시 배우 추상미의 연출작이다. 게다가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사례라 하겠다. 그는 단지 연출만 한 게 아니라 작품 내 화자로, 이야기에 출연도 하고 그것을 이끌기도 한다. 나아가 작품 전체가 지닌 감정의 흐름이 있다면, 이는 상당 부분 배우 추상미, 감독 추상미 본인의 공 내지는 본인의 역할로 인해 나온다. 그러니까, 연출자이자 화자이자 스스로 대상이 되는 인물, 을 보는 낯선 기분이 들면서도 반 세기도 더 지난 일이 여전히 현재에도 끝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체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다큐멘터리 역시 영화 장르의 하나이며 어떤 소재와 대상을 다루든 그것을 작품으로 담고자 하는, 연출자의 의도가 최소한이라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완전히 날것 그대로의, 조금도 가공되지 않은 피사체만이 담겨야 한다는 건 오해에 가깝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이자 수단으로써, '허구의 이야기'를 창조하지 않고 실제 대상의 모습을 특정한 기획 의도를 가지고 관찰하거나 따라가는 기록일 테니까. 그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익숙하게 가늠할 법한, 연출자와 피사체 간의 거리감을 상당 부분 허물거나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가 관객 각자에게 어떤 감흥으로 다가갈 것인지는 여기에 달려 있다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장르 자체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이 이야기가, 지금 왜 필요한지, 다음 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될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할까.


글을 쓰는 본인에게도 전쟁과 분단은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상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북한과 관련한 뉴스가 들려올 때면 그때 잠깐, 그러다 다시 평소의 생업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잊고 지내거나 평소에 자주 생각할 기회는 없을지도 모르는 어떤 비극에 대하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유럽 땅에서 누군가가 여전히 아파하며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 남과 북의 두 여성이 함께 떠나는 이 여정은 우리가 배운 역사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발자취가 되고 있다. 78분의 짧은 상영시간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겠고 누군가는 저 먼 폴란드 땅이 마치 이웃처럼 느껴지기도 하리라.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메인 포스터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 추상미 감독

2018년 10월 31일 개봉, 78분, 전체 관람가.


출연: 추상미, 이송 등.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 (2018년 10월 23일, 메가박스 코엑스)

*<폴란드로 간 아이들>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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