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Nov 08. 2018

통역이 없이도 전해지고야 말 거라고 믿는, 사랑의 언어

영화 <청설>(2009)

<청설>(2009)은 모처럼 맑고 청량한 데다 순수하기까지 한 영화였다.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작품이고 또 대만 영화를 이야기할 때 몇 손가락 안에 빠지지 않곤 하지만 그러나 <청설>이 아주 잘 만든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양양'과 언니 '샤오펑'의 이야기, 그리고 '티엔커'와 '양양'의 이야기가, 한 영화 안에서 서로 썩 잘 스며들고 녹아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돌이킬 때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게 될 수밖에 없었음을 알지만, 관람 도중에는 각자의 리듬감이나 비중이 이질적이었다.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본 것처럼. 그러나 <청설>을 그럼에도 지지할 수 있는 건, 사랑과 꿈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 어느 한 사람의 청각과 같은, 감각이 제한된 조건 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근래에 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목소리의 형태>를 떠올렸다. 청각장애가 있는 인물이 등장하고 수어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닮아있어 보였다. <목소리의 형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는 "'말을 한다'는 건 일방적이다. 상대가 어떻게 듣든지, 내 할 말을 하고 나면 듣는 것과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건 청자의 몫이 된다. 그러나 언어가 음성이 아니라 문자이거나 신체와 관련되는 순간, 그것은 상호 간의 언어가 된다. 글은 직접 읽어야 하고, 수화는 그 뜻에 상응하는 기호를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쓴 적이 있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 관해서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화는 음성 언어보다 느리다. 문자 언어나 음성 언어와 달리 수화는 손의 모양과 동작, 그리고 발화자의 표정으로 의사를 전한다. 제한된 시간 (음성 언어보다 느리기 때문에) 동안 한정적인 표현 방식으로 의미 전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화는 기능어보다 내용어 위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나는 수화를 알지 못하지만, 내용어 위주라 함은 형식이나 편견 없이 마음의 본 뜻을 전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라고 썼다. (여기에 다 쓰진 않겠지만, <원더스트럭> 역시 소재의 일부 면에서는 겹쳐 생각했다.)


영화 <청설> 스틸컷
영화 <청설> 스틸컷

상대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과 상대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한 사람 사이에서, 그리고 말을 하는 (혹은, 할 수 없는) 대신 서로를 바라보고 눈을 맞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청설>은 말이 제거된 채 표정과 손짓으로만 오가는 소통을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유도한다. 변의 소리만이 들릴 뿐 극장 안이 온통 조용해진 채 '양양'과 '티엔커'의, 그리고 '샤오펑'과 '양양'의 작은 행동이나 움직임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 관객은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을 능히 헤아릴 수 있지만 영화 속 당사자는 종종 어긋난다. 하지 않으려 했던 언행이 나오고, 전하려고 했던 뜻이 잘못 전달되기도 한다. 한동안 만남이 단절되기도 하며, 멀어지거나 다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독 마음에 오래 밟히는 한 장면. '양양'과 '티엔커'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양양'이 이번엔 꼭 자신이 사겠다며 모아 온 동전 다발을 꺼내는데, 기다리는 다른 손님과 점주의 눈치를 보던 '티엔커'가 덜컥 지폐 몇 장으로 계산을 해버린다. '양양'은 자존심이 상한다. 그거 하나 못 기다리느냐고, 기다리면 또 좀 어떠냐고. 우리는 상대를 보고 있으면서도, 함께 있으면서도, 종종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신호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 놓치거나 간과하거나 혹은 충분한 이해 없이 혼자서 판단한다. 견고해 보이던 관계는 사소한 데서 어긋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큰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언성을 높이고 싸우거나 토라질 때, 많은 경우에는 상대의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머리로 안다. 그러나 마음과 반대로 툭 내뱉어지는 모나고 심한 말, 그 가운데서도 영화의 영문 제목처럼, 상대는 늘 당신이 더 생각해주고 더 헤아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Hear me. 나를 들어주세요. 속이 상할수록 그 말은 더욱 간절해진다. 제발 들어주세요.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라고. 그러니 건강한 관계를 오래 이어가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되는 것일까.


영화 <청설> 스틸컷

내 감각은 아무리 해도 당신의 어떤 언어 하나를 끝내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어떤 사람처럼, 혹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처럼. 그러니 우리, 좀 더 노력해서 함께 알고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가자. 청각을 잃은 사람에게는 수어가 있듯이, 그리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신 더 풍부한 손짓과 표정으로 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듯이. 어긋나기도 할 것이고 또 그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배우고 연마해나가야만 하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마음을 기울이는 그 움직임들이,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통역이 필요하지 않은, 그 자체로 통하고 열리는 꿈같은 기적, 기적 같은 사랑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청설>은 일면 투박해 보일지라도 그 순수하고 푸른 믿음을 담은 영화로 들린다, 내게는. (★ 6/10점.)



영화 <청설> 국내 메인 포스터

<청설>(聽說, 2009), 청펀펀 감독

2018년 11월 8일 (국내) 재개봉, 109분, 전체 관람가.


출연: 펑위옌, 진의함, 천옌시, 린메이슈, 나북안 등.


수입/배급: 오드


영화 <청설>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2018년 11월 1일 CGV용산아이파크몰)

*<청설> '대만 첫사랑 로맨스의 시작' 영상: (링크)

매거진의 이전글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겐 현재형인 역사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