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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23. 2018

당신 덕에 진정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2018)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중에서 (1화)


드라마를 영화만큼 많이 봤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좋은 드라마는 첫 회부터 자신의 장점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연예인을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며 폄하하기 바쁜 대중들과 매체의 행동을 정확하게 짚고 있으며, 작품이 정해놓은 설정이 단지 소재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역시 알 수 있다. 그 바탕이 있고서야,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의 얼굴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여러모로 이후 전개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다움', '-스러움' 같은 말들로 아무렇지 않게 개인의 고유성을 훼손시키거나 무시하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늘 '나다움'을 고민한다. 공동체로 포장된 사회에서 '나'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겪어본 이들은, 서로를 기필코 알아보기 마련이다.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어떤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끝내 버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이야기. 특히 '한세계'(서현진)의 직업이 배우였다는 건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최고의 설정일 것이다. 사람들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아는 척하고 그걸 '알 권리'라고 포장하지만, 자신의 프로필이 노출된 채 불특정 다수에게 투입 대비 산출이 명확하지 않은 재능을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약자일까, 아니면 인터넷 뒤에 숨어서 아무 말이나 생각 없이 뱉는 사람이 약자일까. 굳이 여기서 강약을 따질 필요야 없겠으나, 누가 약자인지를 따져야 한다면 고민해볼 필요조차 없이 '연예인'이 약자다.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중에서 (4화)


'한세계'라는 캐릭터가 배우를 천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건 자신이 늘 다른 (외모의) 사람이 되어가며 살고 있었기 때문인데,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처지에서 그는 언제나 숨고,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도재'(이민기)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더 이상 숨으려고만 하지 않고 세상 바깥으로 기꺼이 자신을 숨기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서도재'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에 한걸음을 더 뗄 수 있게 된다.


"신기해서요.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이 끝과 저 끝의 사람들이 만나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는 게.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일. 어쩌면 사랑하지 못했을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주는 일."
"운명 같네요."
"우리요?"

(6화 중에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중에서 (13화)
"하고 싶은 말 하세요, 보고 싶은 얼굴 보면서. 두려워하지 마세요. 단지 새로운 자신을 찾은 것뿐이니까."
"사는 건 영화랑은 다른 거야. 그러니까 그런 널 그냥 안아줘. 그런 널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7화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좋은 대사'란 무엇일까 늘 생각하게 된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으나 이는 단순히 멋진 말, 비유적인 말인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 벗어나지 않은,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이리라. 겉으로 보이는 '나'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규정될 수 없고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진짜 나의 '나'. '세계'와 '도재'의 이야기, 그리고 '은호'(안재현)와 '사라'(이다희)의 이야기 모두는 드라마의 주제를 결국 벗어나지 않고 조응한다.


"진짜구나 서도재 씨, 진짜 나랑 똑같이, 아픈 사람이구나."
"웃어요, 행복한 것처럼."
"일단 해봅시다, 세기의 커플."
(4화 중에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중에서 (16화)


내가 그 어떤 흔들림에도 망설임 없이, 그 어떤 시련에도 흔들림 없이, 온전하게 나일 수 있다면.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 하에 있다면, 상대의 존재로 인해 나를 미워하지 않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일. 기꺼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왜 하필 나여야만 했을까'라는 물음에는,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있은 후에야 '반드시 나여야만 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어야만 했구나'라고도 말해볼 수 있겠지. 많은 말을 하고 싶고 많은 이야길 할 수 있지만, 대신 다른 이야기 두 대목을 여기쯤 어디에 가져다 놓는다. "그러나 사랑은 아무것도 이겨낼 수 없다. 사랑 자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랑은 사랑을 대신하여 싸우는 우리한테 달려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바이선, 『에브리데이』에서),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해." (브라이언 싱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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