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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27. 2018

3년 전 내가 지금의 내게 보내는 애도일기

썼던 글과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다시 꺼내 읽다

10월이었다. 각별히 여기는 사람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기를 좋아한다. 종종 쓰는 일기에 그에 관한 언급을 간접적으로 하거나, 사진을 폴더별로 구분하거나 메신저로 그가 했던 말 중 기억할 만한 대목을 캡처해준다더나 하는 그런 것이다. 한때 가깝고 소중하게 지낸 이가 있었다. 한때라기엔 그리 짧다고 볼 수는 없는 기간을 알고 지냈는데, 깊은 고민을 나누고 커피나 술도 종종 마시며, 자주 닿았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멀어졌는데, 그러고 나서도 스마트폰에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의 일부는 얼마간 남아 있었다. 또 그러다가 시간이 얼마만큼 흐른 뒤, 작은 실수로 기기 전체를 초기화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기록 중의 일부가 유실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느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것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때 알게 되었던 노래 중 한 곡을 듣는데 뜬금없이 지난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 택시를 잡아 보내며, 오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때가 있었다. 책을 선물하며 포스트잇에 짧은 메모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내가 갖고 있는 '가까웠던 사람'의 기준 중 하나는, 아무런 단서 없이도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목소리나 취향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느냐 하는 거다. 기간의 짧고 오랜 것의 정도는 어느 정도는 유관하나 반드시 유관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그냥, 그때 그런 사람이 있었고 어떠한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생각이 난다. 어디 가서 기억력 나쁘다는 소리 잘 안 듣는 나인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다. 가까워지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연해지고, 어떤 사람은 그저 웃음이 나고, 어떤 사람은 눈물이 나곤 한다. 어쨌든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거치고 지나 온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또 다시, 꽉 찬 달에 조금씩 그림자가 생기는 모양을 보게 되는 요즘이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지금 내가 곁에 있는 모든 당신과 당신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동안에도. 그리고 이 계절이 너무 춥지는 않았으면 한다. 흘러서 고마운 11월이다.



라고 2015년 10월 30일에 적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며,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혹은 이전에는 아니었던 내가 되어간다. 3년이 지난 그때 어떤 계기로 글을 적었는지는 여전히 기억한다. 다만 그것에 대해 느끼는 내 감정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번 가을을 보내며 그날 적은 이 글을 문득 생각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아주 똑같은 사람은 아닐 것인데, 사람에 대해 겪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람에 관한 일은 얼마나 겪든 간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저히. 이건 마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코끝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겨울의 기운을 마주하다가 지난 가을을 생각하고는, 최근 읽고 있는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김진영 역, 이순, 2012)의 몇 대목을 다시 꺼낸다.




"깜짝 놀라면서 나는 깨닫는다.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들에 대한 기억이 더는 나를 울게 만들지 않는 순간이 이제 왔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67쪽)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79쪽)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기념비"의 필연성.

Memento illam vixisse.*" (123쪽)


*그녀가 살았었음을 기억하라.


"처음으로 이 애도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매번 나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니라 그녀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 그녀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이제 예민한 감수성이 다시 돌아온다.

애도의 슬픔이 시작되었던 그 첫날처럼 생생한 느낌이." (162쪽)


"이 애도의 메모들을 기록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슬픔. 이 현상은 피할 수 없는 변화일까, 망각의 과정일까? ('병'이 지나가는 걸까?) 과연 그런 걸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의 텅 빈 바다 위에 떠 있다 - 그 바다의 버려진 해안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 나는 더 글을 쓸 수가 없다." (223쪽)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2년간 기록을 남겼다. 부모나 형제 자매 등 가족을 잃게 되는 일과, 친구나 연인을 떠나보내는 일은 같은 층위의 것으로 놓고 볼 수는 없겠다. 그러나 어쩌면,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일과, 친밀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일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아픔은, 아주 다른 종류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는 그래도 잘 있더군요.
계절이 떠나는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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