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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09. 2018

우린 한 치 앞도 몰라요. 다만 나는 아직 과거에.

장강명 작가의 소설과 함께한 제주

[ 9월의 제주 이야기: (링크) (링크) ]


9월과 달리 11월의 제주는 여행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행이었다. 잠깐의 비행. 타인에게는 거의 여행자로는 보이지 않을 법한 차림. 오히려 출장처럼 보일 만한. 여행이라 생각지 않았다. 이를테면 문래동에 있다가 합정에 잠깐 책 사러 들르는 수준의 움직임이었다 내겐. 읽을 책과 세면도구 정도만 챙긴 단출한 토트백, 특가로 대충 구한 왕복 4만 원대의 항공편, 대강 검색해서 몸 뉘일 곳만 있으면 된다 싶을 마음으로 덜컥 예약한 작은 게스트하우스.


김포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지난 제주 여행 때 '책방 무사'에서 산, 장강명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었다. 장편소설이지만 160여 쪽의 분량은 탑승구로 향하기 전 커피를 마실 때와 1시간 남짓의 비행시간에 각각 나눠 읽기에 적합했던 데다, 『한국이 싫어서』(2015)가 그랬던 것처럼 장강명의 문장과 단어들은 마치 활자와 내 눈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길이 있어 거기로 향해야만 할 것처럼, 그대로 읽혔다.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멍하고 아득하게 다시 첫 페이지의 첫 문장으로 돌아갔다. 읽는 동안은, 비행기 모드로 전화기를 설정해둔 채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아무 음악이나 들었다. 셔플을 켰는데 첫 곡이 심규선,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 윤하, 심규선, 심규선, 샘 스미스, 카를라 브루니. 무작위가 아닌 것 같은 작위적인 셔플이었다. 재생 대기열을 보다 한 번 더 셔플을 돌렸다. 글쎄, '비행기 모드'라고 쓰다 보니 생각나는 것. 제주행에서나 김포행에서나 내 대각선 앞자리의 남자는 아이폰 X의 노치 디스플레이 덕에 좌상단에 KT LTE라고 더 뚜렷하게 보이도록, 전자기기를 비행 모드로 전환하라는 기내 안내 방송이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나오고 나서도, 승무원이 주위를 지나가거나 말거나, 심지어 몇 분 후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도, 거의 이륙 직전까지 셀룰러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제주행 때의 그 남자는 트위터를, 김포행 때의 그 남자는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을 갈무리한 인터넷 기사의 덧글 창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다기보단 거의 반사적이고 기계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위아래로 쓸기만 하는 류의 제스처인 듯하게. 쫌. 뭘 하라고 하지 말라고 말을 하면 말을 들으세요. 그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으로 디스플레이를 뚫고 싶습니까. 당신 전화기가 정말로 통신 방해나 전파 방해를 일으켜 비행기에 좋지 않은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신 전화기 배경화면의 그 다정히 웃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뭐라고 하실 겁니까. 아니, 뭐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를 포함해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모든 사람들 에게는요.


비상구 좌석.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어떻게 이야기라도 살짝 해, 말아? 그러려니 해? 저 사람 한 명만 저러는 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유난스러운 건가? 생각하려던 그때서야 남자는 전화기를 집어넣고는 (제어센터를 열어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지만) 잠을 청했다. 그나마도 김포행 후드 짚업 사내는, 내 자리가 바로 앞좌석이 없는 중앙 비상구 좌석이었던 터라, 내내 한쪽 다리를 떠는 모습까지 그대로 드러냈다.


굳이 상상하자면 극장에서 영화 상영 중일 때도 아무 거리낌 없이 전화기를 꺼낼 사람들. 자신한테 누가 점잖게 이야기라도 하면 그 사람이 쓸데없이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타인에게 미치는 둔감함은 어쩌다 나오는 나 자신의 것마저 거의 죄악에 가깝게 여기며 오히려 사람은 평생 혼자만 살 게 아니라면 될 수 있는 한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고까지 믿는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그 아픈 사실에 관하여. 나의 옆에 타인이 있다는 온도에 대하여. 8,000m 언저리의 상공에서 시속 600km대로 날던 두 대의 비행기는 구름 위에 떠 있는 내내 보이지 않는 전파 방해를 받을 뻔했겠지만 와중에도 나는 그 몇 분간의 내적 짜증을 견디고 나서는 주위 한 번 살피지 않고 책만 읽었다. 고맙습니다 장강명 작가님. 9월의 제주에서 저는 당신의 책을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수상 소감이랑 인터뷰도 너무 좋았어요. 다른 책도 읽을게요 꼭. 혼자 떠났고 혼자 돌아왔지만 거의 장강명 작가님과 함께 다녀왔다 해도 될 만큼의 비행이었다. 가방에 담긴 책 한 권이 내게 주는 위안이란 게.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아,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제주공항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는, 밤색 뿔테 안경을 쓰신 기사님이 내게 자일리톨 껌을 건넸다. 혼자서만 씹기 조금 민망하시다며. 기사님은 조수석 창문을 조금 내리고 올리는 것까지도 바람이 불까 뒷좌석의 내게 물으셨다.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후 느리고 반복적인, 중간 높이의 경보음이 차내에 울리고서야 얼마 전부터 시행된 '전좌석 안전벨트 의무화'를 떠올리며 오른쪽 어깨 뒤로 손을 뻗었다. 아침부터 쏟아지던 비는 공항에 다다를 무렵 그쳐 있었다. 국내선이라고 하셨죠? 기사님이 내게 한 번 더 묻고는, 정확히 출발 지점 게이트 앞에 나를 내려주셨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 다리 떠는 후드가 보이는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았던 건, 체크인을 출발 25분 전에 해서 키오스크에서는 선택 가능한 좌석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건 택시가 천천히 주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숙소에서 노래 한 곡을 더 듣느라, 씻으면서 폼 클렌저의 새 것을 물 묻은 손으로 뜯느라, 머리를 말리다 말고 창문을 열었다 닫느라, 전화 한 통을 받느라, 택시를 미리 잡아두지 않고 숙소 문을 나서면서 한만하게 부르느라 얼마간의 시간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자기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어." - "알아." <비포 선셋>(2004)의 그 대화가 생각났지만 그만큼의 달콤한 여유는 아니었고, 꼭 아침 그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것은 아닌 정도의 여유였지만, 나는 비상구 좌석에 앉을 만한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승무원은 이륙 전 비상구 좌석에 앉은 사람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나를 포함한 다섯 명에게) 따로 알려주었는데, 언젠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중 오작동이었지만 화재경보기가 울린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간단하고 사소한 안내사항조차 가능한 흘려듣지 않으려는 편이다.


잠시 비가 잦아들었을 때.


여기까지는 두 달 전의 그날처럼, 김포공항에서 적었다. 다음 주 며칠간의 나는 부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서울로 돌아가야만 하겠지. "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달라"라는 이병률 시인의 문장을 떠올렸지만(『끌림』, 2010), 지금은 그런 시간이 허락되지는 않은 것 같다. 현재형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을 생각하는 일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하겠다. 지나온 곳들을.


"우리가 초능력이 있어서 미래를 내다보고 앞일을 미리 알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 세상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단 한 치 앞도 못 본다 이거예요. 그래서 난 미래를 예측하겠다, 추론하겠다는 사람은 믿지 않아요. (...) 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홀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2015)
잠깐이라도 바다를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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