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2015)
"아무튼 난 예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 왜 모든 걸 꼭 정의 내리려고 고민하는 건데? 테레즈는 생각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롤』, 김미정 옮김, 그책, 2016, 151쪽.)
'테레즈'와 '캐롤'이 서로 사랑하는데 마침 상대가 여자인 건지, 상대가 다름 아닌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지, 정의하고 규정하려 하기 전에 우선 사랑부터 하라고, <캐롤>(2015)은 말하지 않는 듯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나에 대해 쓸데없이 입을 연다고 한들, 내가 나를 알고 믿는 한 자신이 부정되지는 않으니까. 영화와 소설 모두에서 '테레즈'는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것에 명확하지 않고 '캐롤'을 만난 이후에서야 조금씩 주체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바로 그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이유를 찾고 과정을 되짚으려 하기보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거기에 집중하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사랑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일지도 모르고, 그 사랑으로 인해 새로이 느끼게 되는 시선과 관점이 이 삶을 새롭게, 더 아름답게 바꿔줄 테니까요.
<캐롤>의 두 남자, '리처드'와 '하지'는 자신과 상대의 관계를 정의 내리거나 매듭지으려 함으로써 상대를 속박하거나 떠나가게 만듭니다. 상대는 지금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복잡한 마음의 갈등을 치러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 명은 뭐든 말을 좀 해보라고 재촉하며, 다른 한 명은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는 상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앗아가려 합니다. 상대의 속사정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발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상대가 레즈비언이어서 자신을 떠나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단지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할 줄 몰랐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을 잃어야 했을지도 모르죠. 상대가 원하거나 재촉하지도 않은 일들에 스스로 골몰해 있느라.
"테레즈는 입구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피아노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조명이 밝지 않아서 처음에는 캐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진 저쪽에 캐롤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 이제는 좀 달라질 것이다. 테레즈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캐롤을 온전히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럼에도 캐롤은 그 누구도 아닌 여전히 캐롤이며, 앞으로도 캐롤일 것이다. (...) 테레즈가 한참을 서 있다가 캐롤을 향해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캐롤이 테레즈를 알아보았다. (...) 테레즈는 캐롤을 향해 걸어갔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앞의 책, 456쪽.)
타자나 환경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 그 사랑 자체가 내포할 수밖에 없는 장벽 혹은 시련을 통해 <캐롤>은 그 어떤 영화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밀접하고 섬세하게 그립니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를 "평생 오늘처럼 맨 정신인 적이 없었을" 만큼 잘 알고, 또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내딛는 한 걸음. <캐롤>의 마지막 장면은 서로의 시점이 영화의 시선이 되고 관객의 시야에 그것이 능히 담기는, 아주 훌륭한 끝맺음입니다. 내 삶에서 대체 누가 언제 '하늘에서 떨어질지'("Flung out of space") 같은 거야 물론 알 수 없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택하"다 보면 우리는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수없이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내 인생에 찾아와 삶을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사람. 돌아갈 수 없음이 다행으로 여겨질 만큼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어쩌면 단 한 명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있다는 것을요.
<캐롤>(Carol, 2015), 토드 헤인즈 감독
2016년 2월 4일 (국내) 개봉, 118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제이크 레이시, 사라 폴슨, 카일 챈들러 등.
수입: (주)더쿱
배급: CGV아트하우스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다음 대사를 고민하며
걸어 나갔다 나의 보폭으로
살아 있는 무대의
빛 속으로"
(이현호, ‘살아 있는 무대’에서,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문학동네 시인선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