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2018)
나의 지금이 누군가의 과거(들)로 인해 만들어졌음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헌사를 보냄과 함께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의 영화. 감독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멕시코인이라는 자각과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를 향한 제작진이자 현지인의 애정이 담겼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 우리의 삶은 따지자면 누군가를 대신해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할 텐데,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화면은 잠시도 암전 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을 다시 붙잡아 애써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이라기보다 <로마>(2018)가 해내는 건 현재에 발 디딘 채 살고 있는 세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그 시간들 하나하나에 일일이 층계를 쌓아 올리는 일이겠다. 그럴수록 영화의 카메라는 낮은 곳에 있다. 흐를 수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적시는 물처럼.
오늘을 대하는 태도와 한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주변인이라 생각될 만한 이의 시점에서 그려내는 <로마>는 (거의) 클로즈업을 쓰지 않지만 극도로 생생한 시공간의 체험을 선사한다. 물론 이 영화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에서 "누군가 단 한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어라."라고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기도 하겠다. 게다가 조금도 과시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조명 하나 명암 하나, 새소리 하나가 빈틈없이 이루어내는 경이로운 기술적 성취까지. 단지 넷플릭스의 선구안이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만으론 <로마>에 대해 별로 말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또 그걸 어떻게 만들어 표현해야 하는지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영화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만나야만 온전한 매체라는 것을 극장 밖에서도 능히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영화. 흑백은 단지 검고 흰 것이 아니라 보이는 만큼의 색깔을 특정한 방식으로 담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 감독의 전작인 <그래비티>(2013)는 말할 것도 없이, 여러모로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비롯해 <덩케르크>(2017) 같은 폭넓은 명작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좋은 영화는 한 번뿐인 삶을 다시 살게 만들고 가지 못할 길을 몇 번이고 걸어보게 만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로마>(Roma, 2018), 알폰소 쿠아론 감독(각본, 촬영, 편집, 제작)
2018년 12월 12일 (국내, 일부 극장) 개봉, 12월 14일 넷플릭스 공개,
135분, 15세 관람가(극장), 청소년 관람불가(넷플릭스).
출연: 얄리차 아파리시오, 마리나 데 타비라, 낸시 가르시아 가르시아, 마르코 그라프, 다니엘라 데메사, 디에고 코르티나 아우트리, 카를로스 페랄타 등.
(국내) 극장 배급: 판씨네마(주)
좋은 이야기는 원대한 표현이기에 앞서 내밀한 대화로 존재한다. 이런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영화는 삶이 그래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행복이 영화에만 있지는 않다고 믿으면서. 좋은 영화를 보면 그게 영화라는 게 고마워서 그걸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게도 고마워진다. 어쩌면 영화는 사람이 하는 만큼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별 수 없이 그런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고, 영화를 보는 이유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겠다. 결말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그토록 끝나지 않은 채 살아있으니, 그러니 나도 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Amor.)
*(★ 10/10점.)
*<로마> 예고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