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쿠아맨>(2018)
DCEU에 속한 영화임에도 선행 학습을 요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하다. 정보 전달의 방식도, 시간과 공간의 이동도 효율적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닮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때로는 우직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자신의 본분에 소홀하지 않는 것. 만약 제작진이 이를테면 '빨리 MCU를 따라잡아야 해' 같은 생각으로 <아쿠아맨>(2018)을 만들었다면 지금 같은 결과물이 오히려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관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면 '저스티스 리그' 내 다른 캐릭터를 작품에 무리하게 등장시켰거나 불필요하게 캐릭터의 기원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탄생 과정과 유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서'가 두 세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알게 되고 나서 겪는 모험, 즉 어드벤처가 <아쿠아맨>을 이끄는 가장 핵심임을 놓고 볼 때, 오직 자신의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만을 담아내는 성실함이 수중 세계의 압도적인 시각화와 만나 <아쿠아맨>은 그간의 우려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매끈한 오락 영화가 되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을 보았을 때의 그 기이한 느낌을 기억한다. 당시 일곱 번째 영화까지 나온 장수 시리즈임에도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던 프랜차이즈에, (아무리 폴 워커라는 배우의 공이 있었다 해도) 단번에 흥미를 갖게 만든 건 전적으로 연출이었고, 다수의 공포 영화를 성공시킨 데 이어 블록버스터에 안착한 제임스 완이라는 이름이었다.
<아쿠아맨> 역시 그의 존재로 인해 지금의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반인반신의 영웅 서사 자체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건 기존의 DC 세계관과 조응하면서 이제껏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캐릭터를 새롭게 선보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용과 시점상으로는 <저스티스 리그>(2017)와 이어지지만 <아쿠아맨>은 완전히 독립된 영화로 감상해도 무리가 없다. 거기서 나는 <맨 오브 스틸>(2013)의 잔상들을 떠올렸고 영화는 여러모로 <원더우먼>(2017)과도 닮아 있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한 영화를 두고 그게 마블스러운 건지 DC스러운 건지를 이야기하는 건 적어도 내게는 쓸모없는 이야기다. 프랜차이즈 영화가 지닌 숙명을 끌어안으면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자신이 지닌 바탕(바다) 하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었으리라. 그러면서 적당히 가벼울 줄도 알고, '메라'(앰버 허드) 같은 중요한 캐릭터에 소홀하지 않을 줄도 알며, 한 세계의 뿌리와 한 세계의 심해를, 두 세계 사이의 심연을 넘나들 줄도 아는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과 <저스티스 리그>에서 '아쿠아맨'(제임스 모모아)과 그의 세계 '아틀란티스'는 사실상 변방이었다. 그 '아쿠아맨'을 <아쿠아맨>은 수면 위로 멋지게 끌어올린다. 영화의 시작에서 잠수함을 끌어올리던 '아서 커리'가 영화의 끝에서는 '아쿠아맨'으로 스스로 일어선다. 이제 남은 건 <아쿠아맨>의 속편을 보는 일이고, 다시 육해공을 함께 오가는 '저스티스 리그'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일이겠다. 트렌치 왕국의 크리처들을 비롯해 각 집단의 개성을 탁월하게 살려낸 <아쿠아맨>을 보며 제임스 완 감독의 다음 DC 영화를 반길 수밖에.
<아쿠아맨>(Aquaman, 2018), 제임스 완 감독
2018년 12월 19일 (국내) 개봉, 143분, 12세 관람가.
출연: 제이슨 모모아, 앰버 허드, 패트릭 윌슨, 윌렘 대포, 돌프 룬드그렌, 랜들 파크,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줄리 앤드류스, 니콜 키드먼, 테무에라 모리슨, 무그레이엄 맥타비쉬 등.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 7/10점.)
*<아쿠아맨> 예고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