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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09. 2019

모든 면에서 초심으로 돌아간, 어쩌면 진짜 트랜스포머

<범블비>(2018), 트래비스 나이트

198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화 <범블비>(2018)에는 스미스, 본 조비, 듀란 듀란, 아하 등의 1980년대 히트곡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는 단지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정도가 아니라 '범블비'(딜런 오브라이언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영화 초반부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의 '목소리' 역할을 음악이 대신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탁월하다. 2007년 이후 만들어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범블비' 어떤 캐릭터인지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 기원을 여기서 알 수 있다. 1980년대에 나온 만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처럼 폭스바겐 비틀을 모델로 삼은 '범블비'의 외형은 21세기의 그것보다 뭐랄까, 한층 친화적으로 생겼다. 거의 반려동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눈을 깜빡이는 행동 등의 세부 묘사에 공을 들였고 여타의 오토봇(이라기엔 '옵티머스 프라임'이 사실상 전부지만)과 디셉티콘('섀터'와 '드롭킥' 등)의 표현 역시 기존 마이클 베이 연출작들에서의 모습보다 훨씬 사실적으로, 그러니까 만화나 저 너머의 Sci-Fi라기보다 드라마 장르의 실사 영화에 가깝게 보인다.


1973년생인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이 인터뷰에서 '트랜스포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트랜스포머> 만화 시리즈를 보며 자랐다고 해맑게 웃으며 언급하는 대목을 유심히 보면서 그가 <코렐라인: 비밀의 문>(2009), <파라노만>(2012), <박스트롤>(2014), <쿠보와 전설의 악기>(2016) 등 다수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품을 선보인 라이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수장이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그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통해 직접 연출자로도 나섰고, 이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수상, 미국 아카데미 및 골든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물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의 제작 방식과 과정은 다르겠으나, 애니메이터로서 그가 여느 감독들 못지않게 디테일에 민감할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겠다.


영화 <범블비> 스틸컷


마치 <터미네이터 2>(1991)에서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엄지를 들어 보이는 제스처처럼, <범블비>에서 '범블비'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주먹을 쥐어 보이는 제스처 역시 영화에서 '범블비'의 중요하고도 상징적인 행동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존 휴즈 감독의 영화 <조찬 클럽>(1985)의 장면을 활용한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서도 존 휴즈 감독의 영화가 언급된다는 점과 영화 내 1980년대 선곡이 다수 활용되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예고편에 등장하는 아하의 'Take On Me'처럼 아예 선곡이 겹치는 경우도 있다) 걸 보며 이 영화, <범블비>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뿐 아니라 1980년대 '대중문화' 전반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범블비>에 대한 감상평이나 리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1982)가 자주 언급되는 걸 보며 이는 나만의 느낌은 아닐 거라고 여기게 된다.


바로 그 <E.T.>를 직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건,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와 '범블비'가 서로 교감하는 방식 때문이겠다. 모종의 일로 목소리를 잃은 '범블비'는 '찰리'의 물음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짓, 손짓으로만 반응하고, '찰리'가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면 가만히 눈을 감는다.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 라디오의 온갖 주파수를 오가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노래 가사를 통해 간접 전달하지만 여기서 '찰리'와 '범블비'의 관계는 언어를 초월한, 마음과 마음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근작 중에서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의 두 주인공을 떠올릴 수 있고, 야마다 나오코의 <목소리의 형태>(2016)도 잠시 생각할 수 있다.)


영화 <범블비> 스틸컷


'찰리'와 '범블비'의 관계가 스크린 밖으로 그 감정을 능히 전달하는 건 두 캐릭터가 인간과 로봇이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로 인해 자신의 잠재력 혹은 정체성을 확인하고, 또 그것을 서로로 인해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 '찰리'는 자신과 달리 아버지를 잊은 듯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들의 정서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있었고, '범블비'는 기억 장치가 손상된 후 자신보다 작고 약한 인간의 손짓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위축되어 있었다. '범블비'는 '자신을 해치지 않는' '찰리'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에서 (때마침 기억 장치가 복구됨과 함께) 달라진 눈빛과 함께 일종의 각성의 순간을 맞이한다. '찰리' 역시 '범블비'의 존재로 인하여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도 같은, 자동차를 만지고 정비하는 일의 쓸모와 보람을 찾고, 나아가 다이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부터 마음의 해방을 맞이한다.


영화 <범블비> 스틸컷


<범블비>는 '찰리'의 방 한쪽 벽에 있는 아빠의 사진과 그 사진을 보며 아침 인사를 하는 '찰리'의 모습, 방 한편의 자동차 장난감과 피규어들을 통해 캐릭터의 성장 배경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한다. '범블비'에 대해서도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기 전 사이버트론에서의 전투 신과 '옵티머스 프라임'과의 짧은 대화 정도로 상황 설명을 대신한다. 이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범블비'라는 캐릭터와 '찰리'의 현재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고,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 가장 낮은 제작비(그래도 1억 3천만 달러 정도이긴 하다.)로 규모보다는 캐릭터가 매 순간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감정의 교감에 많은 공을 들인다. 마이클 베이가 제작자로 물러난 <범블비>는 북미를 포함한 글로벌 흥행 성적이 현재 2억 8,955만 달러로, 결코 적지는 않은 제작비를 생각하면 국내외에서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파라마운트가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의욕적으로 되살려볼 수 있게 할 만큼의 성과를 거둔 걸로 볼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제가 만들고자 했던 '트랜스포머 영화'의 모습"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자신감을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범블비> 속 '찰리'와 '범블비'의 모습은 타자와의 교감이 줄 수 있는 근원적인 경이의 감정을, 그 낯선 떨림을 고스란히 느껴지게 한다.




영화 <범블비> 국내 메인 포스터

<범블비>(Bumblebee, 2018),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2018년 12월 25일 (국내) 개봉, 114분, 12세 관람가.


출연: 헤일리 스테인펠드, 존 시나, 조지 렌드보그 주니어, 피터 쿨렌, 딜런 오브라이언, 안젤라 바셋, 파멜라 애들론 등.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범블비> 스틸컷

(★ 8/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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