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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09. 2019

새해의 다정한 취향들

이번 계절에도 우리

커피 마시고 밥 먹고 다시 커피. 그러니까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를 알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안다. "혹시나 이미 읽지는 않았을지 싶어 고민했다"라고 하지만 상대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고른다. "우리 항상 새로운 계절이 되면 지나간 계절을 추억하며 마주 앉아 커피를 한 잔 하도록 하자"며 엽서에 다정한 문장을 쓰는 사람, 좋아할 것 같았다며 생소한 작가의 끌리는 제목의 소설을 슬쩍 내미는 사람. 서로에 대해 모를 만큼만 알 때 어쩌면 서로 다른 사람들은 해를 바꿔가며 전에 나눴던 이야기를 또 꺼내고는, 가만히 앉아 웃었던 것에도 또 웃을 수 있다.


웃다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숨이 넘어갈 만큼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짓궂을 줄도 알지만 다정하지 않을 줄 모르는 사람들. 만나자고 한 곳에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지하철역에 내려 걸어왔다. 나만 빈 손으로 왔네, 하며 두 손을 모으고 있자니 "네가 저번에 만났을 때 박준 시집 선물해줬잖아, 네 덕분이야"라며 화답해주는 사람들. 우린 아마도 봄에 다시 만날 것이다. 집에 오니 주문한 책이 나란히 도착해 있었다. 책들 중 한 권은 발행일이 내 생일이랑 같네, 생각하며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어보곤 하는 것이다.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람들의 옆에 있으면 나는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날씨, 그런 것들을 스르르 펼쳐놓게 된다. 다음에 만나면 이 문장을 보여줘야지, 하면서 내가 산 책과 선물 받은 책을 번갈아 넘겨야지. 해가 질 무렵에 걸으면서는 "아 하늘 예쁘다."라고 실없이 말하기도 하면서, 카페를 나서면서는 "어두워지니 추워졌다"며 당연할 법한 말도 해보면서. 셋이 걷다 내 자리를 사악 바꾸고는 "내가 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있어서"라며 슬쩍 웃어 보이며. 주위에 무심한 편이고 스스로의 리듬 밖에는 집중할 줄 모르는 나는, 이런 저녁일 때면 새해가 아니어도 언제나 많은 복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을 펼치는 오후가 이리 다정할 때면. (2019.01.05.)



*

취향이나 관심사 같은 게 비슷하다는 건, 꼭 같은 감독을 좋아하거나 같은 영화에 사랑에 빠지는 일 같은 게 아니다. 무언가에 탐닉하는 행위 자체가 어떤 느낌의 일들인지를 비슷한 방식으로 아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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