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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24. 2018

읽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읽게 된, 에세이 같은 소설

김금희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오픈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서울 도심의 어떤 서점에서, 김금희 작가의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분류되는 매대에 꽂혀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잘못 분류된 것이겠지만, 소설도 읽다 보면 픽션임을 알면서도 너무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혹은 바로 제 마음속에 있거나 있었던 특정한 어떤 이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펼쳐진 책에 가만히 손을 얹었던 적이 누군가 한 번쯤은 있겠죠. 그러면 그 소설은 제게는 에세이가 되기도 하는 것일 겁니다.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아주 오래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제가 가졌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난다, 2018)라는 좋아하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습니다. 과거의 일을 오래 생각하는 사람은 단순히 미련이나 집착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이 지나간 다음의 현재가, 지금이, 어떤 의미들로 채워져 왔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사람일 테고 그는 매 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는 사람일 겁니다.


책을 고르고 나서 표지를 넘길 때의 느낌은, 극장 상영관의 자리에 앉았을 때 실내가 어두워지고 스튜디오의 엠블럼이 나올 때의 그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제목이든 작가든 그걸 골랐을 때 품어보는 감정들이 활자를 읽어가며 어떤 기분으로 깨어질지 가늠해보는 건 얼마간의 긴장을 동반하거든요. 깨진다는 건 주로 예상이나 기대를 엇나간다는 건데, 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쌓이고 또 쌓이기만 하는 마음들은 내내 읽는 이의 과거를 생각하게 하는 언어들을 따라가고 있었고, 매 작품의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확인할 때면 그 너머의 이야길 홀로 상상하거나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선미'의 이야기('그의 에그머핀 2분의 1')에서의 마지막 문장이 곧 이 책의 태도인 것만 같습니다.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 보이는 게 전부인 줄 알고 그 이면을 굳이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수많은 사진을 대충대충 스크롤만 넘기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과거를 헤아린다는 건 지금은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마음으로 다시 보는 일일 텐데,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저는 모처럼 책이 주는 온기를 마주했습니다. 모두가 빠르게 내일만을 생각할 때,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마찬가지로 생면부지의 누군가의 하루가 안녕했을지, 그냥 안녕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안녕한지 가만히 생각해보는 이가 있다는 게, 그 생각에 잠긴 채 펜을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게 바로 그 '온난한 하루'를 가능하게 만드는 거겠지요. 내년에도 계속해서 이런 마음들을 읽고 싶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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