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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14. 2019

저도,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할게요

마음산책북클럽 2기 첫 만남


#01. 2019년 2월 13일, 홍대 레드빅스페이스


기다렸던 자리, 맨 앞에 앉아 작가님의 낭독과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들뜨면서 평온했다. 책에 실린 "도망가지 않고 여기서 쓰는 사람으로 계속 남을 수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의 한 문장을 거듭 생각했다. 이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걸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있을까, 를 늘 생각하다가도 추위 속에서 초연히 양파 수프를 마시듯 온기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그리고 무가 뽑혀나가듯 힘든 일과 속에서도 나의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가기. 타인에 대한, 타자를 향한 예의와 바른 태도를 잃지 않기. 이 좋아하는 책이 새로 또 생겨 두 권이 됐으니 그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선물해야지.





#02. 같은 날, 스타벅스 서교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그 작가의 목소리로 듣고 그 책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같이 듣는 자리는 시든 소설이든 언제나 좋은데, 김금희 작가님이 오신 마음산책북클럽 첫 번째 만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책 사인을 받고 선물을 챙겨서는, 마침 행사장소에서 합정역 가는 길에 있는 스타벅스가 열 시 반까지 영업이라 한 시간은 앉아 있다 갈 수 있겠다 하며 들러 숏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음료를 받아 자리를 잡고는 매장 외부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다시 스타벅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김금희 작가님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사인을 받은 지는 몇 분의 시간이 흘렀고 나 말고도 수십 명의 사인을 더 하셨을 테니 날 알아보신 건 낭독자로 참여했기 때문일 텐데, 그것보다는 합정역 스타벅스라는 그 장소와, 아홉 시 사십 분이 조금 넘은 그 시간이 환기되었다. 이 시간이라니, 여기라니. 멋쩍게 웃으며 짧게 인사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마치 오늘 북클럽에서 다룬 책 외에 현대문학 핀 시리즈 『나의 사랑, 매기』도 가방에 있어 거기도 사인을 받을까 싶었지만 혼자의 시간을 침해하고 싶지는 않아 그냥 자리에서 혼자 책을 읽었다.


이 이야기를 내일 만나는 지인에게 했더니 성덕이라며 기분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맞다. 이런 날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실은 낭독할 때 입 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 같은 게 스스로 들려서 읽는 내내 '잠깐 멈추고 물 한 모금을 마셔야 하나' 싶었지만 흐름이 끊기는 것은 또 원치 않아 그냥 계속 읽었는데, 사인받으면서 작가님과 (사회를 맡은) 편집자 님께 그 얘길 웃으며 했더니 "그런 소리 전혀 안 들렸고 낭독 잘해주셨어요!" 하시는 거다. 스스로한테만 느껴지는 소리 같은 건가 생각하면서, 그랬다면 또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오는 내내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의 선미와, '파리 살롱'의 윤을 떠올렸다. 낭독하기를 청한 건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을 요즘 계속 혼자 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어떤 작가의 앞에서 그 작가의 책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가. 집에 오는 길도 '온난한 하루'일 수 있었다.






#03. 2018년 9월의 제주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이병률, '이 넉넉한 쓸쓸함'에서, 『바다는 잘 있습니다』)


어제의 마음산책북클럽에서 김금희 작가님은 행사 내내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여편'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사전에는 없는 말이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졸저', '졸시' 등의 말을 쓰곤 하는데, 그런 단어를 꺼내는 건 겸손 내지는 겸양의 뜻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여'라는 말을 찾다 보니 ''나'를 문어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이 눈에 띄었다.

(*추가: 내가 들은 작가님의 그 말은 '여편'이 아니라 '엽편'으로, 짧은 소설의 다른 말이라고 한다. 사전찾기를 더 습관화 해야지. (마음산책 담당자 님, 고맙습니다.))


작년 가을에 나온 소설인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의 후반 교정 작업을 하는 동안 가파도에 머무르셨다는 작가님의 이야길 듣고 내 가을의 제주를 떠올렸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지난 여행을 오래 생각하는 건 그만큼 그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이겠다. 낭독자 중에는 제주 여행을 마치고 북클럽 스케줄에 맞춰 비행기를 타 캐리어를 끌고 행사장에 오신 분도 계셨고, 출산 후 첫 외출을 하신 분도 계셨다. 한 권의 책에도 저마다의 삶이 깃들고 사연이 스며 그것이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여행지에서 책을 함께하는 건 그러니 특별한 경험이다. 뉴욕에서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 『캐롤』을 읽었고, 제주에서는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와 장강명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었다. 다음 여행이 어디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때가 온다면 김금희 작가님의 소설을 손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실은 '어디가'에 대해선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다른 계절의 뉴욕에 다시 가고 싶고 다른 계절의 제주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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