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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14. 2019

보지 않아야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로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로마>와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는 주목도가 낮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수잔 비에르 감독의 <버드 박스>(2018) 역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많은 작품이다. 영화의 각본을 쓴 에릭 헤이저러는 <라이트 아웃>(2016), <컨택트>(2016) 등을 작업한 데 이어 <반 헬싱> 리부트의 각본가로도 내정되어 있고, 원작 소설은 당초 유니버설이 영화화 판권을 갖고 있었으나 넷플릭스로 넘어간 경우다. 산드라 블록은 <그래비티>(2013)에서 지구로 귀환한 지 한참이 지나서도 고생길이 멈추지 않는데, '불을 켜면 안 된다'거나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등의 특정한 감각을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설정 자체는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지만 <버드 박스>는 몰입과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여타의 공포나 스릴러 영화와 달리 스스로의 설정 자체를 끝까지 활용하지는 않는다. 참혹한 일이 있은 지 5년 후를 먼저 보여준 뒤 그날로 돌아가는 영화의 구성 역시, 비극을 어렴풋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그 배경을 관객들이 쫓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마치 눈을 가린 채 움직이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을 닮았다. 결과를 대략 알고 있지만 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관객 역시 눈은 뜨고 있지만 숨 죽인 채 지켜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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