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토>로부터
<레토>(2018)는 공연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시작해, 공연의 한 곡을 끝낼 무렵에서 끝난다. 나타샤의 얼굴로 시작해 나타샤의 얼굴로 끝나고 마이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빅토르 최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는데, 음악의 작사나 작곡의 생리를 알 리 없는 나로서는 음악영화이기에 앞서 사랑영화로 다가왔다. 말미에 '빅토르 초이를 위하여' 같은 문구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끝나는 자막 덕분이 아니다. 음악(을 비롯한 영화나 게임, 책 등 여타의 문화 콘텐츠를 포함한 것들)에 내가(혹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곧 영화의 작법과도 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와인은 두 종류야. 좋은 거와 진짜 좋은 거.", "기타는 왜 들고 다녀? / 곡 쓰려고. / 어떤 노래? / 그냥 노래.", "아직 미완성이야. 그럼 어때, 좋으면 된 거야.", "밴드 이름 생각해봤어, 가린과 쌍곡선. / 가린이 누군데? / 몰라, 멋있으면 된 거지." 등 사소하게 지나가는 숱한 대사들에서 일단 좋음이 먼저이고 이유는 나중인 취향의 생성 방식과 과정이 드러난다. (201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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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과 각본이 언급될 무렵의 엔딩 크레딧 도중에는 다른 영화에서 거의 보기 드문 문구가 하나 있다. 'based on the memories of'. 나타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짤막하게 표기되는 것인데, 여느 실화 혹은 실존 인물 기반의 영화와 달리 실화와 관련한 언급은 영화의 서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끝무렵에야 타 영화에서도 흔하게 보는 그 문구 -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일부 캐릭터나 지명, 사건 등은 각색되어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요지의 언급 - 와 함께 표시된다.) 어쩌면 이건 우리가 많은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대할 때 필요한 시선이자 태도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본인의 회고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동시대에 생존한 누군가의 기억이나 증언을 바탕으로 하거나 혹은 사후에 자녀나 후손에 의해 이야기가 전승되는 등의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겪은 그 자신이 아니고서야, 온전히 정확한 '그 이야기' 자체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