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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21. 2019

영화가 언젠가 끝나듯 꿈도 영원히 꿀 수는 없기에

영화 <레토>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를 다루는 맥락이나 화법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나는 나무와 숲을 모두 보기 어렵다면 숲을 먼저 봐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레토>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는 그 화법의 이질감을 중반부 어느 시점까지 느꼈다. 종종 등장하는 'Sceptic'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일종의 영화적 일탈에 가까운 세 번의 순간에 매번 '이건 없던 일임'이라 쓰인 팻말을 들고 있거나 자신이 직접 그 말을 하는데, 보수적으로 보자면 그건 허용될 법한 일탈이라기보다 과시적인 언어 활용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노래 가사를 인용해 "정말 완벽한 날이에요"라고 말을 바꾼다. 영화의 마지막 공연에서 빅토르가 부르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도 등장한다. "난 알아 / 내 나무를 / 내일 어떤 꼬마 녀석이 / 부러뜨릴지도 모른다는 걸". 나무가 죽을 걸 알면서도 심어보는 마음. 혹은 끝날 줄을 알면서도 꾸어보는 꿈. 한편으로 빅토르의 밴드명이 '키노'인 것이 (극장에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걸 관객에게 일깨워준다면 'Sceptic'의 존재는 지금 그 영화에서 보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니라 그곳의 어떤 계절(여름)을 투영한 꿈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꿈은 영원하게 꿀 수는 없다. 그러나 꾸고 나서 계속 생각하는 건 가능하다. 영화가 영영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영화관에 가지는 않는 것처럼. 한여름밤의 꿈을 겨울에도 꾼다.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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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가 나타샤에게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자기와 낡은 성에서 사는 게 내 꿈이었어." 나타샤는 이렇게 답한다. "그거면 충분해. 커피 줄까?" 영화를 통틀어 내게 가장 좋은 대사를 꼽으라 한다면 그걸 언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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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보는 내내 존 카니의 <싱 스트리트>(2015)를 떠올렸다. 단지 시대적 배경이 유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에서 만들어지는 'Riddle of the Model' 뮤직비디오처럼, 비슷한 영화 이미지들이 여럿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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