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2015), 리들리 스콧
(글 제목은 이문재의 시 "어떤 경우"(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의 끝부분을 인용한 것.)
영화와 소설 모두 (거의 대부분) 철저하게 과학적 (가설이 아닌!)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각본과 연기, 음악 등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한 편의 작품으로서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 장르적으로 보나 상업성으로 보나 <마션>의 최고의 장점이다. 게다가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에서 오히려 심하게 낙천적이고 엉뚱하기까지 한 주인공의 모습을 1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데에서는 일종의 아이러니한 재미까지 있다. (재미의 포인트 자체는 영화와 소설의 구성 및 서술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일말의 다른 면이 있다.)
다만 주인공의 긍정 에너지가 보는 내내 관객을 즐겁게 하는 데다 화성과 지구를 오가는 플롯의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작품 전체의 만듦새에 있어서도 흠 잡을 구석이 없음에도,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조금은 이상할 만큼 감응(感應)은 컸으나 감흥(感興)에 이르는 정도는 적었다. 이는 주인공을 여러 차례 위기 상황에 빠뜨림에도 그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긴박하게 만들거나 관객을 주인공에게 강하게 이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 거리를 두고 흥미롭게 지켜보게 만드는 정도의 방식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기간 고립된 주인공의 극적인 심리 변화의 폭을 줄이는 쪽으로 인물의 성격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션>은 텍스트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각색이 이루어졌음에도 드물게 원작의 정수를 영화로 매우 잘 옮긴 사례로 볼 수 있는데, 그 특유의 밝은 분위기 탓에 거장의 손길이 스며 있음에도 다소 '리들리 스콧 영화' 같지 않다 여겨지는 면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출보다는 드류 고다드의 각본이 <마션>의 결과물에 훨씬 더 기여한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마션>이 원작이 있지 않은 창작물이었더라면 올해의 명작으로 손꼽았을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은 생의 의지가 차분한 문제 해결과 난관 극복을 이끌어내는 힘이 된다. 또한 그 삶은 어떤 비용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와트니의 대사를 빌려)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삶을 향한 근원적인 의지를 그리는 영화가 실제로 내내 에너지를 뿜어낼 때의 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마션>이다. 3D나 4D 관람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장면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큰 화면의 극장에서 보는 것은 매우 권장할 만하다. (개봉 당시에는 아이맥스 포맷으로 상영하지 않았으나 현재는 아이맥스 포맷으로도 상영 중이다.) (★ 8/10점.)
<마션(The Martian, 2015)>, by 리들리 스콧
2015년 10월 8일 (국내) 개봉, 144분, 12세 관람가.
출연: 맷 데이먼, 제시카 차스테인, 크리스틴 위그, 치웨텔 에지오포, 제프 다니엘스, 세바스찬 스탠, 케이트 마라, 마이클 페나, 맥켄지 데이비스, 숀 빈, 엑셀 헨니, 도날드 글로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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