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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11. 2015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삶의 뜻을 만들어간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홍상수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띄어쓰기 하지 않고 표기할 것을 강조했다. 의미부여는 알아서 하기 나름이겠다. 이로서 '지금'이라는 말과 '그때'라는 말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지금'과 '그때'가 시간의 차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곧 달라진 마음을 뜻한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일체유심조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같은 일을 두고도 언제든 그것을 떠올리고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는 요지다.


두 개의 챕터로 구분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1부는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다. 2부에 이르러서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소제목을 보게 되는데, 영화의 내용으로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1부와 2부 사이에는 시간의 흐름이나 원인과 결과와 같은 연관성이 전혀 없다. 다만 공간적 배경과 등장하는 인물이 같을 뿐이다. 엔드크레딧을 포함하여 121분의 상영시간인 영화의 거의 정확히 절반씩을 차지하는 두 개의 영화를 연달아 본다고 생각해도 좋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 <자유의 언덕>(2014)의 상영시간이 67분이었으니, 처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상영시간을 접했을 때는, '<자유의 언덕> 같은 영화 두 편을 이어 보는 셈이겠구나' 싶었다.

만약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과 그 속의 대화를 텍스트로 풀어서 쓴다면 아주 많은 문장들이 나올 것이다. 1부와 2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저 우연하게도 툭 던져지는 사소한 말과 행동들이다. 함춘수(정재영)가 자신이 기혼임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윤희정(김민희)이 화실에서 화를 내는 것과 내지 않는 것, 춘수가 길에서 주웠다며 반지를 꺼내는 것, 혹은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거나 술 한 잔을 덜 마시는 것 따위의 요소들이 두 이야기의 차이를 만들어간다. 보는 관객은 어느새 큭큭거리며 지켜보지만 상황에 놓인 당사자는 그런 것들을 알 리가 없다. 차이를 안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원하는 일이 원하는 대로 벌어지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함춘수가 수원에 하루 일찍 내려오지 않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왔더라도, 아마도 윤희정 혹은 그와 유사한 다른 어떤 인물을 만났을 것이다. 안성국(유준상)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눴을 수 있고, 염보라(고아성)와 함께 서울로 향했을 수 있다. 지금과 그때가 둘 다 맞다고 해도 좋고, 둘 다 틀리다 해도 좋다. 일어날 일은 조금 먼 길을 돌아서라도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일찍이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그대로 감상으로 전해져 오자, 적잖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함께이든, 그 순간이 그 순간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에는 모른다. 관계 역시 만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오늘도 조금씩 만들어간다. 삶의 여정은 아무 때나 어떤 식으로든 지금 가는 길이 더 길어지거나 방향이 바뀌거나 아예 새로운 길로 접어들곤 한다. 최근의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대해 탐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홍상수는 어느새, 사람이 살면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요소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있다. 시간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다. (★ 8/10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Right Now, Wrong Then, 2015)>, by 홍상수

2015년 9월 24일, 121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정재영, 김민희, 윤여정, 최화정, 서영화, 기주봉, 고아성, 유준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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