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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1. 2015

꿈을 우러러보되 발 붙이고 있는 여기를 사랑할 것이다.

<업>(2009), 피트 닥터, 밥 피터슨

떠 있는 풍선을 한없이 바라보면 어느새 누군가의 지난 꿈들이 거기 있다. 픽사 애니메이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점들 중 무엇보다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바로 깊이 있는 이야기 그 자체이며 잘 세공된 작품 속에 절묘하게 담긴 유머와 감성이다. 후반부 프레드릭슨의 '모험 노트'에 "당신과의 모험 고마웠어요. 이젠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요!"라 적힌 엘리의 글귀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져 오는 것은 <업>이 시작한 후 15분 정도까지 펼쳐지는, 과거 젊은 날의 프레드릭슨의 꿈과, 엘리와의 평생을 지켜온 사랑 때문이다. 이제 엘리를 먼저 떠나보낸 후 프레드릭슨에게 남은 건, 오로지 그녀와 일생을 함께 보낸 집 한 채가 전부다. 우편함에는 근처 양로원에서 날아온 팜플릿이 꽂혀 있고, 주변은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건설업자가 그의 집도 매입해 허물어버릴 기세다.

영화에서 프레드릭슨의 집이 처음 바닥에서 떠오르는 순간 사용된 헬륨 가스 풍선은 약 2만 개 정도, 실제로 집 한 채를 띄우기 위해서는 그것의 1천 배가 넘는, 2,600만 개 정도의 풍선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실사영화보다도 오히려 더 깊고 순수한 감성을 <업>은 전달해낸다. 수많은 영화 속 인물들이 갖가지 이유로 모험을 외치고 무용담을 들려주며 여정을 떠나지만 <업>의 주인공처럼 더 확실하고 분명한 동기를 지닌 인물이 또 있을까.

프레드릭슨에게는 찰스 먼츠의 영웅담을 접하면서 모험을 꿈꾼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아내와 공유하며 자신의 앨범을 만들었다. 러셀이 온갖 배지로 치장하고 GPS를 들고 고글을 낀 채 요란하게 등장하는 것과 달리 프레드릭슨(과 엘리)의 일생의 모험은 별 다른 게 있지 않다. 생일 같은 날들을 소소하게 축하하고, 함께 앉아 사진을 찍고, 동산을 거닐고 다과를 즐기는 그런 것들이 그의 회상을 차지한다. 꿈이 지나간 그의 일상은 지독히 외롭고 공허하며 무기력하다.

마침내 밝혀지는 찰스 먼츠의 실체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서 집을 짓고 살겠다는 프레드릭슨의 꿈이 가치 없고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오로지 남아메리카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풍선에 매달린 집을 통째로 움직여 도달한 곳이 아찔한 낭떠러지였던 것처럼, 어딘가로 거창하고 화려하게 떠나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은, 특히 소중한 사람과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모험처럼 즐겁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헬륨 가스가 다 빠져 더 이상 뭔가를 띄울 수 없는 풍선처럼, 누구나 원대한 꿈을 한번쯤 품고는 하지만, 우리의 꿈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난 삶을 돌아볼 때 가끔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지나간 것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말하는 개들과 희귀하고 귀여운 도요새, 그리고 박 터지게 싸우다가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는 두 할아버지들을 지나오면 <업>은 어느새 그런 인생의 가르침으로, 가르침답지 않은 뭉클함과 아련함으로 향한다. 나는 앞으로도 올려다볼 만한 멋진 꿈을 꾸겠지만, 그보다 더 꿈 같은 당신과의 삶을 사랑할 것이다. (★ 9/10점.)


<업(Up, 2009)>, by 피트 닥터, 밥 피터슨

2009년 7월 29일 (국내) 개봉, 96분, 전체 관람가.


(목소리) 출연: 에드워드 에스너, 조던 나가이, 밥 피터슨, 크리스토퍼 플러머, 딜로이 린도, 엘리 닥터, 제레미 리어리, 제롬 랜프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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