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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01. 2019

'모던 러브'의 불협화음, 탭댄스만큼은 인상적이었음에도

영화 <스윙키즈>(2018)

<스윙키즈>(2018)에 대해 좋았던 건 한 영화에서 '환희'와 'Modern Love', 'Free As a Bird' 같은 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과 '스윙키즈' 멤버들이 탭댄스를 출 때 발의 움직임과 리듬감을 보여주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는 것 정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의 실상과 이념 대립과 전시라는 상황, 그리고 춤이라는 소재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느라 몰입의 중심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결론을 당겨 말하자면 <스윙키즈>는 장르적으로 이를테면 전쟁 영화와 뮤지컬 영화 사이의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간신히 한 편에 녹여낸 인상이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조합의 두 구성은 물론 장르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전쟁 영화는 어떠해야 한다' 같은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선 '스윙키즈' 팀이 결성되는 계기 자체는 상황적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데, 흑인 미군과 중공군, 북한군과 민간인이라는 팀 구성 자체는 다양성 고려라기보다 이야기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보이긴 해도 그 자체로 아쉽지는 않다. 요점은 '스윙키즈' 멤버를 제외한 다른 조연들의 존재인데 '린다'(박진주)는 '판래'(박혜수)가 통역에 나서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며 '제이미'(AJ 시몬스) 역시 기수'(도경수)가 춤을 계속 추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광국'(이다윗)이나 '기진'(김동건) 같은 인물들 역시 '스윙키즈'가 작 중 상황과 배경을 딛고 크리스마스 공연 무대에 서도록 하나씩의 디딤돌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예정된 비극을 위한 장치에 머무른다.) '샤오팡'(김민호)과 '병삼'(오정세), 그리고 '잭슨'(자레드 그라임스)까지 '스윙키즈' 멤버들의 캐릭터만큼은 그 전형적 팀 구성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개성 있는 방향으로 구축했다는 것은 다행인 점이다.


영화 <스윙키즈> 스틸컷
영화 <스윙키즈> 스틸컷


전란 속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탄생하고, 웃음과 희망의 순간은 늘 존재한다. 그 자체가 모순이 되지는 않는다. <스윙키즈>는 오프닝에서 뉴스 형식의 보도를 빌려 거제도에 마련된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적 배경을 간추리는 한편 전시라는 상황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납득시키려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에 기대는 듯 보이던 영화의 전개는 어느 순간 스스로 현실과 동떨어진다. (당연히 영화 속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 그대로에 충실한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기발한 유머 장치처럼 보였던 '샤오팡'과 '병삼'의 '언어 초월' 대화도 어느 순간 우연히 말이 통한 것을 넘어 빗속에서 자막으로 전해지는 대화를 보면서 영화가 스스로 판타지가 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흔히 생각하길 전쟁 중에 이념을 초월한 채 남북의 사람들이 모여 서양의 춤을 함께 추었다는 상황 자체가 어쩌면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일인 것처럼 여길 수 있지만, 적어도 중반 어느 시점까지 <스윙키즈>는 현대사의 끔찍하고 아픈 상처 속에서도 춤과 음악이 지닌 보편적인 흥과 리듬을 도경수를 비롯한 주축들의 호연에 힘입어 관객들에게 능히 전염시킨다.


문제는 '광국'과 '기진' 등의 인물들이 수용소에 새로 들어오고 난 뒤 영화가 급격하게,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클라이맥스를 향해 비극적인 방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무겁지 않고 경쾌한 뮤지컬 영화를 기대했을 관객도 있었겠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희극에서 비극으로의 전환은 한편으로 과감하고 용감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화의 화자 역시 '기수'에서 '잭슨'으로 어느 순간 넘어가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영화 스스로 탭댄스라는 소재 뒤에 깔린 전쟁이라는 배경을 서사의 동력 혹은 비극의 납득 가능한 까닭으로 삼기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탭댄스 신의 황홀한 연출과 카메라 워킹에 기대는 가운데, 관객으로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영화의 흐름을 봐야 할지 모호해진다. '기수'일까, '잭슨'일까, 혹은 '스윙키즈' 팀원 전체일까, 아니면 '수용소'라는 공간 전반일까.


영화 <스윙키즈> 스틸컷


앞서 '샤오팡'과 '병삼'의 언어 초월 대화가 영화 스스로 (대놓고) 판타지임을 인정하는 제스처 같다고는 했지만, '박 하사'(박형수)가 수용소장에게 일부러 대충 통역해줄 때처럼 <스윙키즈>는 이념이 맹목적인 수단으로 쓰이던 시대에 서로 다른 언어가 지닐 수 있는 불통의 상황을 유머로 잘 활용한 경우다. 또한 막사 안의 북한군 일원이 ('광국'이 들어오기 전) 서로 과거 이야기를 하는 상황을 비롯해 영화에는 좋은 유머의 현장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관객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대한 사전 정보나 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든 간에, 영화가 보여주는 수용소라는 공간은 영화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대목만 취사선택하여 담은 듯하다. 이를테면 연병장 한가운데에서 '판래'와 '샤오팡'과 '병삼' 세 사람이 펼치는 공연은 청중들의 조롱으로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더 많은 청중이 함께하며) 웃음과 호응으로 뒤바뀐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영화가 매번 슬쩍 넘어가려 할 때, 영화가 멋들어지게 잘 살린 탭댄스 장면들마저도 그 의미가 희석된다. 오늘날 역사적 현장이 보존된 명소가 된 거제의 모습을 별안간 보여줄 때, 클라이맥스의 비극적 상황마저 덧없이 소모된 건 아닌가 싶었다.


작년 연말 개봉한 세 편의 한국영화 <마약왕>, <스윙키즈>, <PMC: 더 벙커>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스윙키즈>는 영진위 통합전산망 통계 기준 14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동 시기 <아쿠아맨>이 500만 관객을 넘어선 것과는 대조적인데, 이는 한편으로 숱한 한국영화들이 흔히 보여온, 무난한 코미디에서 눈물 짜내는 클라이맥스로 이어가는, 전개에 관객들이 더 이상 전적으로 호응해주지는 않음을 뜻하는 바라고 여긴다. (<마약왕>과 <PMC: 더 벙커>는 경우가 다르지만.) 한동안 외화가 강세를 보이던 시기를 지나 다시 <말모이>에 이어 <극한직업>이 폭발적 흥행을 기록 중인 지금 <스윙키즈>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우려' 같은 이야길 하는 건 섣부른 발상이겠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할 수 있겠다. 무난한 기획에 적당한 장르적 허용과 웃음과 눈물의 가미, 멀티캐스팅, 그것만으로 영화가 자연히 흥행하는 건 아닐 테다. 데이빗 보위나 비틀즈의 곡을 삽입하는 데에 들어갔을 노고만큼이나, 이야기의 치열한 만듦새에 대한 고민도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 <스윙키즈> 메인 포스터

<스윙키즈>(2018), 강형철 감독

2018년 12월 19일 개봉, 133분, 12세 관람가.


출연: 도경수, 자레드 그라임스, 박혜수, 김민호, 오정세, 송재룡, AJ 시몬스, 로스 케틀, 이다윗, 김동건, 박진주, 이율림, 이규성, 박형수 등.


제작: 안나푸르나필름

배급: (주)NEW


영화 <스윙키즈> 스틸컷

(★ 5/10점.)




*

여담이지만, 쓸데없는 것을 걸고넘어지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과 1950년대의 미군 문화나 흑인에 대한 인식 및 대우가 차이를 보인다 해도 '잭슨'은 중사(E-7)이며 '제이미'는 상병(E-4)이다. 민간이 아니고 군대라는 곳에서, 그것도 한참 아래의 사병이 부사관에게 너무 막 대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성경 공부하는 곳으로 위장된 무도회장에 들어설 때도 입장권은 '잭슨'이 배부하는데, 이때 '잭슨'에게 욕설을 뱉는 미군들의 계급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도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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