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2004)로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다른 수많은 걸작들에 비하면 <터미널>(2004)은 아주 잘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관계는 싱겁게 소모되며 주된 갈등의 축인 '딕슨'(스탠리 투치) 역시 (납득 가능하지만)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다. 무엇보다 코미디를 담당하는 요소와 파토스를 자아내는 요소가 따로 떨어진 듯 완전히 하나의 드라마로 기능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캐릭터를 생생히 살린 배우들과 더불어 <터미널>을 끝내 살리는 건 영화의 순수함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이야기를 상당 부분 바꾸면서 들어간, '빅터'(톰 행크스)가 뉴욕에 반드시 가야만 했던 이유를 알게 되면 영화가 개봉한 2004년보다 오히려 지금 이 작품의 가치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 과장된 듯한 순수함과, 집요할 정도의 기다림은,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불필요한 것처럼 치부되지 않던가. 머무는 순간 언제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201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