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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1. 2019

나쁜 영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으로부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컷과 컷의 편집이 영화 언어로서의 기능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인물을 캐릭터가 아니라 체스말보다 못한 존재처럼 다루면서도, 제작비를 의심하게 할 만큼 공간의 세부묘사는 조악하고 나태하다. 많은 신에 쓰이는 노골적인 (아웃포커싱 된) 배경은 실사 영화가 아닌 3차원 애니메이션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있을 만큼, 조금도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 없는 총격 신과 속도감 없는 경주 신이 만들어지며,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길지도 않은 상영시간을 각자 할애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안타깝다. 연출부터 각본, 촬영, 편집, 음악 등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파국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좋은 배우들의 연기도 전혀 빛나지 못하고) 이는 현장에서 생기는 화학 작용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제작과 투자의 여러 간섭들이 혼재된 채 기계적으로 일을 해치운 것처럼 보이는 결과물이다. 영화를 심드렁하게 지켜보며 나는 116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한동안 이 영화의 장점을 찾기를 포기했다가 끝내 두 가지를 떠올렸다. 빼곡한 제작, 투자 크레딧이 오프닝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과, 소위 '스포츠 영화'와 '항일 영화'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익숙한 도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전개 면에서는 조금도 의문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후자는 장점이라 칭하길 포기했는데, <자전차왕 엄복동>은 부재한 연출력과 리더십으로 결과물을 정해놓은 채 현장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린 작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좋은 영화'의 기준이 있듯 '나쁜 영화'에 대한 기준도 있다. 그중 많은 것을 충족한다.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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