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불안한 나날
오늘은 참석하기로 한 시사회가 있는 날이었는데, 초과 모객 등의 몇 가지 사정으로 영화를 보지 못했다. 대개 그 배경에는 사소한 선택들이 있다. 이를테면 카페에 앉아 있다가 조금 더 일찍 나서지 않은 것이라든가. 승강장에서 바로 온 지하철을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타기로 한 것, 같은 일. 업계에 종사하면서 시사회의 모객과 진행 절차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지 못한 건 오로지 내 하루 중 있었던 작은 선택의 선택들이 모인 결과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낮에 본 다른 영화의 포토티켓을 출력하고 함께 간 지인과 근황을 나눴다. 영화 보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불안한 봄을 맞이하는 중이다. 지금 걸어가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까, 잘 걸어가는 중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엄마의 전화가 온다. 한쪽에서는 "잘할 거야"라고 하시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하시는 분. 이직 준비를 하면서도 (몇 안 되는) 글쓰기나 모임, 강의 같은 것을 통해 '먹고살고 있다'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처럼이라면 '먹고 살' 만한 정도가 되지 못한다. 은유 작가님이 말한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면 이런 것일까. 좋아하거나 추구하는 것들은 대체로 무용하거나 당장 드러나지 않는 것에 있다. "뚜벅뚜벅 더 걸어가보기로 한 것, 다행이다."라는 한영옥 시인의 말이 언젠가의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집 근처의 자정 무렵의 카페. 밤에는 거의 다 마신 채 얼음만 남은 플라스틱 컵이 있고, 책 두 권과 펜과 노트가 있으며,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 책들이 쌓여 있다.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오늘도 생각한다. 앞으로 할 것들의 공지를 올리고 내용과 이야기 준비를 하면서, 지난 일들을 가능한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극장에서 몇 달 전에 본 영화의 주제곡을 아직도 듣고 있는 일이라든지. 다음주에 참석할 시사회라든지. (201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