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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래 가는 글

쓰는 것을 오래도록 생각하기

by 김동진

내일자 열세 번째 에피소드 쓰기를 조금 전 마쳤다. 오전 메일로 예약 발송되는 [봐서 읽는 영화] 연재 글은 보통 발송 전날 늦은 오후 혹은 저녁에 쓴다. 예약 시각을 정하고 발송을 누르는 시점은 보통 자정 무렵인데, 오늘은 그보다 몇 시간 앞서 마감을 했다. 첫 이메일 연재를 하면서, 체감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본인이 글을 더 빨리 쓰는 사람임을 다시 체감하고 있다. 짧으면 2,000자, 길면 2,700자에 이르는 글을 쓰면서 짧게는 30분 만에 초고를 완성한다. 오탈자와 맞춤법, 문장 및 전반적인 흐름을 확인하고 글의 제목을 정한 뒤 메일을 쓰는 시간까지 더해도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던 날도 있다. 이건 1시간 동안 쓸 글을 4시간 동안 쓴다고 해서 네 배 나은 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마감을 의식하면서 적당히 여유롭게 쓰되, 평소에도 딱히 마감이 없는 글이라 해도 글 하나를 너무 오래 붙잡지는 않으려 하는 편이다.


그러다 지난 글들을 다시 읽던 중 '너무 빨리 썼다'고 생각했다. 글이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간의 소통이라 한다면,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 역시 읽는 이들의 마음과 기분을 염두하며 채워가는 시간이라 한다면 조금 더 천천히 써도 좋지 않을까 싶은 까닭이다. (제일 오래 쓴 글도 2시간을 넘지는 않는다.) 물론 그 글이 얼마만큼의 어떤 글인지는 쓰는 사람을 떠난 순간 읽는 사람의 몫이 되지만, 돌려 표현하자면 '당신이 오전 8시에 온다면 나는 전날 저녁부터 행복할 거야'가 아니라 '오전 8시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 순간이동해서 달려가야겠어' 같은 느낌인 거다.


최근 곁에 두고 읽는 책 『태도의 말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올해의 책'을 꼽아 달라는 청탁을 받고 어떻게 리뷰를 쓸까 고민했다. 읽는 순간 톡톡 쏘는 문장이 눈에 띄는 글? 영업력이 곳곳에 포진된 글? 은근슬쩍 나의 유식을 드러내는 글? 순간의 감정으로 후드득 써내려 가는 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이 모든 각색된 의도를 버리고 느낀 만큼 쓰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자극적인 글은 순식간에 읽히지만, 정말 맛있는 글은 끝까지 읽히니까."(91쪽) 여기서 특히 주목한 대목은 "순간의 감정으로 후드득 써내려 가는 글"이다. 물론 앉은자리에서 그냥 쓰는 글이 아니라 어떤 영화를 볼지 생각하고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무엇에 대해 쓸지 생각하며 보고 나서 쓰기 전에 쓸 것을 생각하는 과정이 또 있지만, 순간이동했지만 지각한 사람의 마음이 되어 한 번 더 생각한다. 어차피 만나는 시각이 정해져 있고 내가 도착하는 시각도 정해져 있는 거라면, 조금 더 천천히 가보자고.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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