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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05. 2019

배우 김윤석의 섬세한 연출작: 모두가 미성년인 사람들

영화 <미성년> 리뷰

하나의 사건, 혹은 해프닝. 이를 두고 누군가는 알면서 모르는 척 하고, 누군가는 수습하려 안간힘을 쓰고, 누군가는 폭로한다. 누군가는 모두를 의식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다. 같은 일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다른 경험으로 남는다. 영화 <미성년>은, 최근의 한국영화를 보면서 단지 배우와 약간의 소재만 다를 뿐 차별점 없이 안주하기만 하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찾아온 신선하고도 반가운 작품이었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

"너 때문에 우리집은 지옥이다!" -주리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성년>은 '법적으로 미성년인' 인물이 실질적 주인공이다. 고등학생 '주리'(김혜준)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윤아'(박세진). 영화의 첫 장면, '주리'는 자신의 아빠 '대원'(김윤석)에 얽힌 어떤 비밀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고, 그 현장에는 '윤아'도 있다. '윤아'는 '대원'과 어떤 일에 관계되어 있는 '미희'(김소진)의 딸이다.첫 장면부터 이들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주리'는 어떻게 하면 엄마인 '영주'(염정아)가 알지 못한 채로 이 일을 조용히 무마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윤아'는 오히려 그것을 '영주'에게 말해버리고, 어쩌면 하나의 해프닝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는 일이며 이제는 다섯 사람, 두 가족 모두의 일이 된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

"네가 두 사람을 기만한 거야, 아니 네 사람을!" -영주


정확한 출처가 생각나지 않는 어떤 말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정말로 알 수 있는 순간은 평소 모습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어떤 일을 겪 되었을 때라는 요지의 말. 앞에서 영화의 제목을 두고 성년의 법적인 기준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이야기해야 할 것은 과연 나이만이 어른이 기준이겠냐는 것이다.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는 순간 '성년'이란 글자가 살짝 먼저 표시되고 나서 그 옆에 '미'가 붙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이 영화가 미성년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되 성인의 기준에 대해, 무엇이 우리를 어른이 되게 하느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 사건을 두고 저마다 다른 태도와 대응을 보인다는 점이 <미성년>의 핵심이겠다. 또한 영화의 인물을 크게 '주리'와 '윤아'로 대표되는 미성년, 그리고 '영주'와 '대원', '미희'로 대표되는 성년으로 나눌 수도 있다.


모두가 미성년인 사람들 - 나이에 관계 없이


영화가 무게중심을 두는 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인 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책임질 줄 아는지가 진짜 어른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표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무게중심을 '주리'와 '윤아'의 시선으로 훌륭하게 포착하며 균형을 잃지 않는다. 영화 <미성년>은 다섯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연극(동명이 아니다)의 이야기 중 한 편을 각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작자인 작가 이보람과 배우 김윤석이 다년간 함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김윤석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출도 직접 맡아 1인 3역을 선보인다. 이 이야기를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그리고 김희원, 이희준, 이정아, 김혜윤, 이상희 등의 배우들이 크고 작은 비중으로 골고루 채워준다. 상영시간은 단 96분. 그러나 꼭 필요한 장면들만 삽입되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연출과 각본, 무엇보다 '주리'와 '윤아'의 내면을 고루 따라가는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의외의 지점에서 간혹 웃음 짓기도 하면서, 예상 외의 전개에 놀라기도 하면서, 그러나 영화가 일관된 흐름과 뚝심으로 관객을 이끌어주는 덕분에, 다소 충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결말부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

특히 중요한 점은 영화 속 '어른'들은, 이를테면 어떤 일로 '미희'가 입원하게 된 병원에서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한두 개의 신만 등장하는 단역일지라도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거의 없다는 데에 있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않거나, 방관만 하거나, 진심 없이 상대를 이용만 하려 한다거나. (그나마 '주리'의 엄마인 '영주'의 캐릭터를 다른 어른들에 비해 좀 더 입체적이면서도 납득할 만한 지점들이 충분히 다뤄지고 있다.) 또한 아이들 중에서도 '주리'와 '윤아'를 제외하면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듯 씁쓸함을 자아내는 단역들도 있다. 배우 출신의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재주인 걸까. 자신이 맡은 '대원'의 비중은 의도한 것처럼 더 적게 설정되어 있는데, 이 점 역시 관객이 '주리'와 '윤아'에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


'빡센' 세상에서, 함께 어른이 되어가기


영화 <미성년>을 보고나서 생각한, 진짜 '성년', '어른'이 되기 위한 기준의 하나를 이렇게 요약하면 어떨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알며, 그것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저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현재 당면해 있는 삶의 여러 과제나 역할들에 따라, 같은 일에 대해서라도 받아들이는 바가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성찰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그것에 대해 소홀하지 않기.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영화 속 '주리'와 '윤아'의 경우 역시, 두 사람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학교만 같았을 뿐 서로 접점도 없었고 본디 친구도 아니었지만) 앙숙이 될 만한 관계였지만 사건 이후, 의외의 순간들에서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두 사람이 아주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 삶의 신비함 같은 게 있다면 바로 그런 순간이 하나의 예가 될 것만 같다. 서로에게 상처낸 이들이, 상대의 것을 보며 "너도 아팠겠다"라며 말 걸어줄 수 있게 되는 일. 영화 속 '주리'와 '윤아'를 보며 생각난 시 하나를 짧게 덧붙이면서 우선 리뷰를 마무리 해야겠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 <미성년>을 다시 보고, 조금 더 긴 글을 적어보고 싶다. 어른에 관한 시 한 편과 함께.




폭염 폭풍 푹력 다 지나온

부드러운 노을 아래에서

자매가 만난다


우리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

언니가 오던 길을 뒤돌아본다


꽉 잡은 두 손 위로

붉은 위로가 내려앉는다


(이사라, '언니' 부분,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105))




영화 <미성년> 메인 포스터

<미성년>(Another Child, 2018), 김윤석 감독

2019년 4월 11일 개봉, 96분, 15세 관람가.


출연: 김혜준, 박세진, 염정아, 김소진, 김윤석, 김희원, 이희준, 이정아, 김혜윤, 이상희 등.


제작: (주)영화사 레드피터

배급: (주)쇼박스


영화 <미성년> 스틸컷

(★ 8/10점.)

*<미성년>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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