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쓰리 빌보드>로부터
영화 <쓰리 빌보드>(2017)를 다시 본다. 사소하게 지나가지만 '웰비'(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이야기를 나누기 직전 읽고 있는 책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라는 소설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밀드레드'와 '딕슨'(샘 록웰), '윌러비'(우디 해럴슨) 등을 모두 포함해, 아주 '좋은 사람'이라 보기는 어려운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치밀한 각본과 입체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쓰리 빌보드>의 여정은 어쩌면 좋은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 말이 '좋은 사람은 찾을 수 없다'와 같은 의미가 아님을 믿는, 한줄기의 희망을 찾는 여정이다. 이 순간에도 범죄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그러나 말이 지닌 엄숙한 무게를 무시하지 않고 각자가 지닌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일들이 있다. 화상(火傷)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지만 자신이 무엇으로 인해 아팠었는지를 잊지 않으면서,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와 타인은 기꺼이 우리가 될 수 있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야 진짜 여정이 시작되는 영화. <쓰리 빌보드>와 같은 걸작의 존재는, 과연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 경탄하게 만든다. (2019.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