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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09. 2019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를 위한 책이 될 때

영화 <타인의 삶>(2006)으로부터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타인의 삶>(2006)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예술가들을 은밀히 감시했던 동독의 비밀경찰 간부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동료이자 상사인 '그루비츠'(울리히 터커)를 따라 우연히 연극을 관람한 '비즐러'(울리히 뮈헤)는 연극 연출자인 '드레이만'(세바스티안 코치)이 무엇인가를 은밀히 숨기고 있음을 직감한다. 곧이어 그의 24시간을 도청하는 비밀 임무를 2교대로 맡게 된 '비즐러'는 소리로만 전해지는, '드레이만'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던 중 한 피아노곡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감시해야 하는 대상, 겉으로는 체제 선전에 부응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그 대상의 일상에서 '비즐러'는 과연 무엇을 들은 것일까. 영화 <타인의 삶>의 이야기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 벌어진 탄압과 감시를 고발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볼 수 없고 겪을 수 없는 '타인의 삶'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있다. 영화에는 레닌이 했다는 말이 인용되는데 "열정 소나타를 끝까지 들었다면 혁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비즐러'가 도청을 통해 들은 피아노곡은 바로 '드레이만'이 연주한 소나타였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정체를 정확히 알기 힘든 여운과 일종의 쓸쓸함이 전해지는데, 동시에 뭉클함이 다가오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이야기를 '아름답다'라고 느낄 때, 그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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