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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주에서 만난 가족(1)

편하지만은 않게 떠났던 여행

by 김동진
DSC_2400.JPG 지난 9월에 이어, 다시,


오늘부터 며칠간 가족과 함께 제주에 머무른다. 지난 9월과 11월에 찾았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더 좋아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니 나름대로 아들 노릇이라는 걸 할 기회도 흔치 않아서 최대한 성실히(?) 그 역할에 임하려 한다. 가시리 유채꽃도 보고 해안도로도 다니고 오름 구경도 하고 숲도 거닐고 그래야지. 대기에 둔감한 편이지만 미세먼지는 '좋음'이라고 한다. 게다가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 메일로 보낼 [봐서 읽는 영화] vol.02의 글은 모두 예약 발송해놓았기 때문에, 우선 가뿐하다. (네, vol.01부터 지금껏, 단 한 번도 '오전 8시 발송'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여정에 필요한 짐은 보통 당일에 일찍 일어나서 챙기는 편이다. 뉴욕에 갈 때는 잠이 오지 않아 꼬박 날을 새고는 새벽 4시부터 짐을 챙겼다. 제주는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곳이다. 그래서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출근이든 약속이든, 서울이든 영주든, 복장에 있어 의식적인 구분을 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 나를 만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며칠 전에 형과 통화를 하는데, 그걸 아는 형이 "정장 입고 오지 말고 ㅋㅋㅋㅋ"라 하더니, 다음날 엄마도 전화하셔서는 "형아가 니 정장 입고 오지 마랬다며?ㅎㅎㅎ" 하시는 거다. 이번 여행은 실은 아빠의 환갑을 맞이하여 마련된 행사다. 하루에 한 번씩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전화하면서 비행기 시간 잘 맞추라는 등, 짐 잘 챙기라는 등의 말들을 하신다. 네, (내 기준) 편하게 입었어요. "풍기 인견 바자마 하나씩 챙겼으니 위에 입을 티셔츠만 대충 챙겨 와." 하셔서 그러겠다고 했다.

빨리 내 보라색 캐리어를 끌고 존 F. 케네디 공항 땅을 다시 밟고 싶다고 또 생각하면서, 평소엔 잘 쓰지 않는 백팩을 꺼냈다. (뉴욕 생각과 <스타 이즈 본> 생각 같은 것을 각각 생각하면서, 나는 무언가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했다. 김금희 작가님의 책 제목처럼.) 스트랜드 서점 에코백을 접어서 넣고, 세면도구와 간단한 옷가지들, 화장품, 일회용 면도기, 선글라스, 충전기, 그런 것들을 넣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뭔가를 읽고 쓸 시간은 그리 마땅하진 않을 듯하여 기내에서 읽을 시집만 챙겼다. 박준과 이제니. 최근 읽고 있는 도종환 시집도 챙길까 했지만 불과 한 시간의 비행에 시집 세 권은 과한 욕심 같아서 미뤄 두었다.

이 봄이 내게 어떤 계절이 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브런치 계정을 통해서 시사회나 쇼케이스 같은 행사 참석 제안이 종종 오고, 나는 매일 영화계 채용 공고를 훑으며 막연한 여름을 생각하고 있다. 아직 사월 치고는 쌀쌀하지만, 금세 더워질 것이다. 지금을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그것을 늘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좋아하고 그것에 관해 쓸 수 있기를 오늘도 바라보면서,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로 한다. 다녀와서 서울에서 해야 할 일들과, 만나야 할 사람, 써야 할 글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봄날의 제주는 가을처럼 좋을 것이다. 곧 또 만나, 나의 제주.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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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그리고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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