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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제주에서 만난 가족(2)

다음 가족여행은 언제가 될까

by 김동진

"오래지 않아서

가져갈 수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스쳐가고 오는 동안

처음이고 나중인 풍경"

(이규리, '풍경' 부분,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서 (문학동네시인선 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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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에서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은 산 넘고 바다 건너 자신을 찾아온 '월터'(벤 스틸러)에게 "어떤 때는 그냥 찍지 않아. (...) 단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 하지."라고 말한다. 카메라가 아름다운 순간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 어차피 눈으로 보는 그대로를 카메라는 (화각이나 이미지 처리 기술 등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아무리 광학 기술이 발달해도 똑같이 재현하지 못한다. '숀'이 거기서 찍지 않은 사진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포착하기 어려운 눈표범을 위한 것이었다. 대신 '숀'은 산행을 도운 셰르파들과 공놀이를 하러 간다.


그러나 언제나, 사진을 아예 찍지 않기보다는 조금씩 남겨두기를 택한다. 변변하지 않은 사진술로 몇 장이나마 남기는 건 기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기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기록하는 이유란 그렇지 않으면 흩어져 휘발될지 모르는 순간들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서고, 기억하는 이유는 다시 올 수 없는 추억의 순간들이 소중하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 제주는 혼자 떠날 때만큼이나 특별히 고대하고 기다린 건 아니었다. 가고 싶은 곳들 대신 전적으로 부모님의 눈높이와 취향에 맞을 만한 갈 곳 볼 곳 먹을 곳을 골라 다녔고, 저녁에는 숙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제주도에 안 가봤다는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아 누가 제주도 이야기하면 "하이고 너무 어릴 때 가봐서 별로 기억이 없어요." 하곤 했다는 엄마. 비행기를 타보지 않은 엄마. 면세점에서 아들들도 (거의) 억지로 뭔가를 사게 하는 아빠. 숙소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하나뿐인 내편] 종영 후 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같이 본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소주 몇 잔에 과일이나 과자 같은 것이 곁에 있다.



브런치에 매일 쓰는 영화일기는 제주에 있는 기간 동안 쉬고 있다. 제주에서 영화를 보진 않으므로, 다녀와서는 떠나기 전에 본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하고, 개봉 예정작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온 제주의 시간은 그러니까 글쓰기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다. 일부러 노트도 블루투스 키보드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간밤에 가방에서 옷을 꺼내다 보니 펜은 들어 있었다. 쓸 일이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그냥 습관이었을 거다. (이건 물론 폰과 두 엄지로 쓰고 있다.)


사진으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남기는 일은, 내가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게다가 사진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달라서 대충 셔터만 누르면 볼품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거리와 각도와 초점에 신경을 써서, 잘, 담아야 한다. 일일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는 찍은 사진들을 한참 동안 돌려 보며, 언젠가의 다음 여행을 기약했다. 베이징, 오사카 같은 타국의 도시들이 언급되었고, 아빠는 엄마가 비행기 오래 타면 멀미날 거라며 놀린다. 베개를 가져오더니 누운 지 10초도 안 된 형은 옆에서 코를 골고, 배달시켜먹을 것 없냐는 아빠에게 나는 배달의민족 앱을 켜고 현 위치로 주소를 설정해서, '가게가 업소'(배달 가능한 곳이 없다는 뜻) 창을 확인시킨다.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가 그때 꺼내는 말, "이 좋은 걸 그동안 먹고 산다고 잘 못 누렸네." 누군가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일에 대해, 영화에 관한 일을 하는 마음에 대해 쓰면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활동 사진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정지 사진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아주 다른 것만은 아닐 텐데, 아직 다 정리하고 공유하지 못한 백 장이 넘는 사진들을 돌아보면서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싼 호텔 뷔페라든가 멋진 오션뷰 카페 같은 게 아니어도 소중한 사람과 비일상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 자체. 나의 사적인 도시 뉴욕에 가족을 동행하게 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나 한 번 더 가고.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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