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2016)의 시나리오를 쓴 터렐 앨빈 맥크래니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일부 모티브가 되기도 한, 자신의 유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마이애미의 어느 작은 주택. 어릴 적 자신을 마치 친아들처럼 돌봐준 마약상 '블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따로 친아버지를 만나고 온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벼락같은 소식을 들었다. '블루'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다른 마약상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 맥크래니는 그 이야기를 꺼내며 덧붙인다. "그 날 이후 나의 주변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없으면 이 세계도 없다는 것과 세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소중하고 좋은 것들이 내 주위에서 없어져버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에서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한 캐릭터 '후안'은 그로부터 탄생했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세줄 요약' 따위의 것으로는 절대로 전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문라이트>를 이를테면 '흑인 동성애 이야기' 같은 말로 요약한다 해도 그건 한없이 투박하고 부족하다. 실제 일어난 일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모든 이야기에는, 반드시 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지난한 마음이 담겨 있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는 일은 작품이 자신의 이면에 품고 있는 작은 고백을 헤아리는 일이다. 사람은 서사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앞과 뒤가 모여 맥락을 이룬 채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이야기들이, 관객이나 독자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것이고 겪을 수 없는 것임에도 저마다의 높낮이에 따른 감성의 진폭을 남기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뜻이 결론이 아니라 태도로서 담기기 때문이고 좋은 태도와 화법이란 과거를 나름의 것으로 재해석해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과정에서 비롯한다.
[봐서 읽는 영화] vol.02는 어느덧 단 두 편의 글만 남겨두고 있다. vol.03는 다음주에 시작된다. 격일 마감을 의식해 대체로 하루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하루는 영화 보기와 글쓰기를 병행한다. 극장 안팎으로 매월 간신히 열 편 가량의 새 영화를 접하기를 어렵사리 유지하고 있다. 지난 사월 역시, 딱 열 편이었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하는 오월이지만 오늘도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최근에는 개봉을 앞둔 어떤 영화의 예고편을 유튜브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되돌려 보고 있다. 영사기의 불빛이 꺼져도 극장 밖에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크린은 바깥 세계의 거울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마음은 거울 반대편의 것을 가능한 틀리지 않게 잘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생각도 하며, 예매해놓은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먼저 찾아보고 있다. 이야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만 제대로 헤아려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오늘도 다시 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은 이 달에도 정말이다. 바르게 잘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