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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5일의 일기, 뒤늦게 옮겨두는

그래도 피곤하지 않은 하루

by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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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오늘을 이야기하자면 어제로 돌아가야 한다. 시사회로 좋은 영화를 봤고,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에 대해 고마운 축하와 응원을 받았다. 소박하지만 맛있는 식사를 했고 와인을 곁들였다. 써야 하는 글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보다 거의 두 배로 빨리 썼다. 2,148자. 한 시간 걸렸다. 새벽에 이메일을 썼고, 다음날인 오늘의 일정상 잠을 적게 자야 했다.


약속시간이 1시간 미뤄져 집에서 나설 채비를 아주아주 천천히 했다. 결국 만날 시간보다 한참을 늦게 되었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9호선 송파나루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석촌고분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가서 조금 걷다 보면 파리바게트가 있고 모퉁이에서 꺾는다, 였는데 문제는 역 1번 출구를 나와서 조금 걸으면 파리바게트가 있는 것까지 두 역이 같은 거였다. 내릴 역을 잘못 내렸다는 걸 출구를 나와서 몇 분을 걷고서야 알게 된 거고. 일단 바로 보이는 택시를 타고 "송파나루역으로 가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행로가 이상하다 싶어 밖을 보면서 지도 앱을 켰는데 기사님이 '잠실나루역'으로 가신 거였다. 9호선이 중앙보훈병원역까지 연장 개통한 게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송파나루역이란 이름을 들어보질 못해서 내가 잠실나루역을 뜻한 거라 생각하셨다는 거다. 게다가 택시 안에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이래저래 방향 설명을 해드렸고, "석촌역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방이사거리까지 가주시면 된다"라고 하니 기사님이 바로 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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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3시에 만나기로 해놓고 내가 카페에 도착한 건 3시 40분이었고, 커피와 함께 말차 티라미수를 같이 주문했다. 삼청동 정독도서관 쪽에 있던 키엘이 없어진 자리에 생긴 곳이 '가배도'라는 걸 알게 된 게 얼마 전이었는데, 그 본점이 송파인 모양이다. 동양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었고 다소 시끄러웠지만 음료와 공간은 좋은 곳이었다. [<캡틴 마블>에서부터 <더 와이프>, <콜레트>, <한공주>, 신현림의 시, 페미니즘, 문학과 책의 쓸모, 글쓰기]에 이르는 대화와 근황을 주고받았다. 읽고 쓰는 일이 과연 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인지, 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점, 리스본에서는 오늘도 독서실 모임을 했는데 정서점 님이 나더러 오늘 좀 피곤해 보인다고 하셨다. 그런가. 전날 와인을 (늦게까지) 마셨고 잠도 적게 잤으니 그럴 만하겠다 싶었다. 나는 거울을 봐도 내 안색이 다른 날과 어찌 다른지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더 잘 보일 것이다. 오늘 독서실의 주된 화제는 비혼과 결혼이었고, 그리고 '예술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책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덕분에) 독서실 모임의 진행시간은 명목상 두 시간이지만, 다들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대화가 이어지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하며 시간을 보니 0시 30분. 피곤해 보인단 말을 들어서인지 정말로 피곤한 기분이었고 신도림행 지하철 막차가 아직 있었지만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왔다.


아무 일도 아닌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사소한 것들을 기록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격일로 보내는 메일에 종종 답장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거기에 또 답장을 하고 싶어 진다. 답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보내지 못한 메일이 몇 개 있고, 그 생각을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손 움직여지는 대로 훑어 적었다. 이제 메일을 써야겠다. AM 2시. 이제 이 이야기는 어제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분명 집에 오는 길엔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일기처럼 이만큼 끼적이고 나니 피곤이가 싹 가셨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하기를 잘한 것 같다. 무용할지라도, 무엇이든.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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