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먹고사니즘을 이겨내게 하는, 다정한 응원

내 동무, 내 동무의 어록

by 김동진

나른한 오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새로운 공고를 봤는데 내게 딱일 것 같다는 것이다. 무엇일까 궁금해 살펴보다가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서 폰을 만지작 거리다,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그 내용을 한참을 살폈다.


KakaoTalk_20190521_211638368.jpg 내말이!(?)


그는 "차분히 잘 준비해서 동무의 진가를 보여줘! 늘 응원하는 거 알지요?"라고 했다. 우리는 동무라 서로를 부른다. 그는 오프라인, 그러니까 학교나 직장 같은 곳에서 알게 된 친구가 아니었다.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내가 올린 어떤 영화에 관한 글과 거기에 그가 남긴 덧글,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디서든 무엇에 관해서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그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고 에너지를 얻곤 하며,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써주세요!"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어 진다. 그때 그는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작가다.




나는 학교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프라인으로 확장된 인연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는 특별히,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응원으로 내게 말하자면 어록 같은 것을 많이 남겨주었다. 예쁜 말을 하려고 억지로 공들여 쓴 문장이 아니라 그의 말과 그의 문장은 언제나 사람과 세상을 향한, 사랑과 이해의 노력들과 선한 기운으로 가득하다고 해야겠다.


KakaoTalk_20190521_212322596.jpg 나 역시 너를 응원해.


우리는,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하면 그렇게 빈번하게 만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만남의 횟수나 빈도를 가지고 그 관계의 친하고 가까운 정도를 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와 나는 계절이 바뀔 때, 어떤 일이 있을 때, 딱히 무슨 일이 있진 않을 때, 해가 바뀔 때, 직장을 옮길 때, 사무실 근처에 들를 일이 있을 때, 그럴 때 종종 이야길 나눴고 커피 한잔을 나누기도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축하할 만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때마다 나눈 이야기들은 정말로 내게 힘이 되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문장들이 있다. 힘든 시기에 도착한 그의 말은, 그저 수많은 카카오톡 메시지의 하나였을지도 모르지만 곁에서 다독여주는 손길처럼, 상대의 기분이 어떨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진정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를 마음으로 잘 아는 사람의 말처럼 따뜻했다. 톡을 한참이나 읽으며 눈물을 닦았던 기억이 난다.


KakaoTalk_20190521_214144258.jpg 2016년 10월, 동무의 말


일하던 와중에도 일순간 울컥해질 수밖에 없는,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다독임이었다. 내 미약한 문장에 담으려 했던, 미처 전하지 못한 의미까지 읽어줘서. 그날 날씨는 초가을 치고는 더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든든히 힘을 내어보았던 기억. 내가 표한 고마움에 그는 "내 동무, 이렇게 꾹꾹 눌러 읽어주니 어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늘 고마워요. 진심을 포개어도 그 넓이를 가늠하지 않고 가만히 눈 감고 대화할 수 있는 그 깊이. 동무에게서 느낍니다. (...) 껄껄. 시간을 버혀내어 곧 만납시다. 응원해요. 내 동무."라고 말했다. 동무라는 말.




동무: [명사]
1.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2.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하는 사람


동무라는 말은 따뜻하다. 친구라는 말도 좋지만, 어딘지 아주 자주 쓰이지는 않는 것 같은 말을 다정한 사람에게서 접할 때면 그 말은 따뜻한 말이 된다. 아직 직장을 다시 잡지 못한 나처럼 그 역시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여행을 다녀왔고 이사도 했다고 한다. 각자 새 명함 들고 만나 커피 한 잔 나누자고 하니 그는 "우리에게 명함이 무슨 소용"이냐며 간지러울 수 있으나 어쩌면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각자의 일과 중 서로의 대화를 마치며 나는 "나 폰에다 'ㅇㅇㅇ의 말' 어록으로 폴더 만들어도 되겠다"라고 했다.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을 것이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난다, 2017)


KakaoTalk_20190521_215450700.jpg 서로의 과정을 지켜보고 진심 어린 응원을 즐겁게 건네는 일.


사람의 말은 그의 수준 내지는 품격을 나타낸다 한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만났던 늦여름 한강변에서의 저녁, 그때도 우리는 웃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었던가. 다리 밑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고 있었던가. 맛난 쌀국수나 커피 한 잔의 온기 같은 것만으로 그와의 연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서 얻는 기운이란 현생의 먹고사니즘을 아주 이겨내진 못하더라도 잘 버텨내게 하는 종류의 것이겠다. 동무가 해준 말들만 열거한 것 같아서, 언젠가 내가 했던 고마움의 말도 하나 덧붙여놓아야겠다. 삶은 결국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겪어온 사람들과의 관계의 총합이기도 할 텐데, 내게는 글 몇 줄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소중한 동무가 있다. 그를 늘 응원한다. 우리는 이번 계절 혹은 다음 계절에도 만나 커피를 (내 표현대로) '크어피'라 부르며 다정한 이야기들을 즐겁게 나눌 것이다.


KakaoTalk_20190521_220056267.jpg
KakaoTalk_20190521_215927966.jpg
사소하지만 고마운 선물을 받았던 날.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멀지도 않은 그날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읽은 시의 한 대목을 여기 남겨두어야겠다.



너의 아침은 이제 슬픔을 모르고

너의 아침은 이제 사랑하는 것만을 사랑하는 것


(중략)


너에게는 아침이 있고

그것은 앞을 향해 움직인다


-황인찬, '너의 아침' 부분, 『희지의 세계』에서 (민음의 시 21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19년 3월 15일의 일기, 뒤늦게 옮겨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