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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23. 2019

곁에서 조용히 다독이고 함께 눈물 흘려주는 영화

영화 <생일>(2019)로부터

<생일>은 우리는 함께 울 수 있어야만 한다고, 자신이 울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울음을 그치라 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영화다. 무너지고 상처 받은 마음이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듯 영화 역시 섣불리 앞을 향해 움직이기보다 인물의 바로 곁에 앉아 그가 왜 목놓아 울 수밖에 없는지 천천하고 깊게 공감하려 한다. 가족과 지인들이 '수호'의 생전 모습을 기리고 이야기 나누는 '생일' 시퀀스가 시작되는 건 영화의 3/4 지점 이후부터인데, 그때서야 <생일>은 누구에게나 마음껏 울기를 허한다. 사건 중심이 아닌 내면 중심의 영화에서 얼마든지 필요한 각본으로 보인다. 세월호 사고/사건이 상업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갖은 우려가 많았지만, 염려 속에서 개봉한 <생일>은 하나의 예시 답안 같은 영화로 자리 잡을 만한 작품이다. 여러 당사자들의 일상과 상실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들을 고르게 헤아리면서도, 애써 메시지를 전하려 하기보다 그저 함께 울어주는 영화의 존재는 아프고도 반갑게 다가온다. (2019.04.22.)



*

그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뭔가를 자주 보고, 듣고, 접했단 이유로 타인을 쉽게 '안다'고 해선 안 되는 이유도,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구분하고, 악수와 약탈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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