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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9. 2019

자신의 기록이 남겨지고 공개된다는 것의 부담 덜어내기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음

글을 다년간 써본 사람은 한 번쯤 경험해봤거나 알 것이다. 과거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놀랄 때가 간혹 있다. '글을 쓸 당시의 내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었나?' 싶어 지는 의외성의 경우가 있고, 전에는 아마 다르게 판단했으리라 여기며 들춰본 자신의 문장에서 지금과 그때의 내 주관이 거의 다르지 않음을 재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수를 따져보자면 내게는 앞의 경우가 더 많았는데, 영화를 주된 예시로 보자면 특정한 배우나 감독, 혹은 특정 시리즈 영화를 볼 때 그 영화인의 미래의 필모그래피나 그 영화의 속편의 향방을 알지 못한 채로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는 대체로 생각이나 감상을 기록으로 남길 당시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다.


영화 리뷰 쓰기에 대한 작은 클래스를 진행하면서도 이것에 관한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같은 것에 대해서도 나중에는 그렇게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주관을 기록의 형태로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 어떤 우려나 부담이 생긴다는 요지였다. 그때 정확히 어떻게 대답했는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지금의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글은 그것을 쓴 사람의 사고나 가치관에 대해 일부분을 대변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글 자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인데, 만약 과거 특정 시기에 쓰인 내 글을 누군가 읽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그가 어떤 판단이나 짐작을 한다 해도 그건 언제나 피상적이거나 부정확하다. 영화든 문학이든 어떤 작품을 접하고 나서 그것의 작가나 감독 혹은 원작자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 편견이거나 오류일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겠다.


행여나 과거의 글에 대해 누군가 반론을 제기하거나 비판의 소지로 남는다 해도, 이를테면 그때의 나는 어땠고 지금의 나는 어떤지, 소명하거나 보론을 더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담을 덜어낸 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스스로의 판단을 문장으로 하나하나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란 없듯 모든 사람이 곡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없기 때문에, 지금 쓰는 글은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낀 내용을 기반으로 자신이 믿거나 추구하는 가치를 벗어나지 않기만 하면 된다. 단지 그것이 누군가에게 공개될 수 있는 글이라면 마무리 이전에 스스로의 화법이나 태도에 대해 (독자를 가정한다는 것은 그 글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생각한다는 것과도 같으니) 돌아보고 점검해보면 되겠다. 오늘도 그래서 생각한다.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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