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고 나면 짧게라도 감상을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글로 남겨주시길 바라요. 별점만 매기는 것보다 한두 줄이라도 의견을 남겨주시는 게 더 좋습니다. 일단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신호 자체가 그 책을 쓴 작가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내 책을 누가 읽기는 하나?'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대부분 자기 이름으로 검색을 많이 하니까 확실하게 전달될 거예요. 서평의 존재는 다른 독자들에게도 응원이 됩니다. '아, 나만 이런 책 읽는 건 아니구나, 아직 책 읽는 사람이 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솔직한 서평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의 역할을 합니다. 깜깜이 시장에 가로등을 세우는 일과 같죠. 꼭 좋은 평만 써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정직한 악평이 있으면 신뢰가 생기죠."
(소설가 장강명, 『Axt』 22호에서의 인터뷰 중)
"독자의 반응을 기대하고 글을 쓰지는 마세요."라는 게, 6년간 블로그를 운영했고 5년째 인스타그램을, 4년째 브런치를 운영해 온 내 결론이다. 쓰다 보면 언젠가 따라오는 것이지 처음부터 그걸 기대하고 쓰면 실망하기 쉽다. 당신이 아주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독자의 활발한 피드백을 받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단적으로 말해서 유튜브에서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올리는 영상 콘텐츠들도 덧글의 수는 많아야 영상 조회 수의 1퍼센트 내외다. (좋아요 수는 조회수의 5~10퍼센트 내외인 듯하다.) 이건 독자가 '정말 꼭 해야만 하겠다 생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코멘트를 일일이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읽거나 보고 말지 거기에 굳이 반응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요즘 사람들은 덧글을 달지 않는다' 같은 말을 단정하듯 하려는 게 아니라 활발한 피드백을 상상하며 글을 쓰는 일은 그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이다. 보상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에 달려 있지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 떠오른 건 강연과 같은 행사에서 진행자가 특정한 사안에 대한 청중들의 의견을 살피기 위해 손을 들어보길 청했을 때의 상황이다. 경험상 손을 들지 않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적지 않다. 짐작하건대 굳이 손을 들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니면 손을 들었을 때 진행자가 무엇인가 요구를 하게 될 경우를 꺼려서일 것 같다. 물론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굳이' 자기 의견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다. 생각이나 의견을 구태여 표명하려 하지는 않는 문화적 바탕이 깔려 있다고 하면 섣부른 진단일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글을 쓰게 된 후 나는 더 적극적으로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문화적 바탕이라는 건,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영화에 대해 정리하거나 해석해놓은 것을 읽으며, 대화로 따지면 "음 맞아, 그런 것 같아." 정도의 반응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지 자신도 어떤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글쓴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기만의 의견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많지는 않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글 안 읽는 시대라고 하지만, 책 안 읽는 시대라고도 하지만, 그리고 그건 비단 최근만의 일이 아니라 오랜 사실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손 안의 프레임을 통해 무엇인가를 본다. 읽기도 한다. 긴 글은 안 읽지만 짧은 문자 언어로 된 무언가는 계속해서 본다. 갖가지 언어로 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콘텐츠를 항상 접하다 보니 그것들 하나하나에 대해 일일이 의사를 표현하고 생각을 공유할 여력은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피드백'보다는 그저 '리액션'이라고 하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은 간단히 더블 탭만 하면 좋아요를 누를 수 있다. 혹은 친구에게 "야 이거 봤어?" 하면서 링크 혹은 캡처 이미지를 공유하는 정도가 리액션의 한 가지 예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플랫폼에서도 조회 수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그것들이 하나 둘 쌓이면 브런치 누적 조회수가 10만이 되고 100만이 되는 것이지만, 그 하나 둘'들'의 의미를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 수많은 우연과 불확실성에 의해 어떤 글은 거의 읽히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글은 평소보다 더 많은 독자에게 노출된다. 늘 '저 숫자 중 실제로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직 필요한 건 영화나 책에 대한 생각과 감상을 기록하는 일에 있어서, 나아가 모든 종류의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 타인을 너무 의식하지는 않는 것이다. 공개된 채널이나 플랫폼에 무엇인가를 남긴다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누군가가 이것을 볼 수 있다'라는 데에서 오는 책임감 내지 윤리의식일 뿐이다. '기록하는 순간 이 기록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므로 단어와 문장, 그리고 글 전체의 내용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고려하는 것' 정도다. 동시에, 쓰는 사람 본인은 글에 담긴 진의와 각 표현들의 앞뒤 맥락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 온전히 왜곡 없이 전달될 수는 없다. 한없이 독자만을 생각하다가 결국은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방송국 신입 시절 선배에게 "작품을 표현이 아닌 대화로 여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대해 에세이에서 말한다. (『걷는 듯 천천히』, 문학동네, 2015)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그저 표현에 그치기보다 그것으로부터 타인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을 바라거나 염두한다. 항상 비공개 채널에만 기록을 남기는 자가 아닌 이상, 공개된 곳에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읽어주길 바라는 데서 비롯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타자와의 소통이 일정한 한계를 내포하듯이 글 쓰는 사람이 독자를 염두에 두는 일도 결국은 한계가 있다.
글쓰기는 언제나 혼자 하는 일이다.
그러니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이라는 매체 혹은 수단의 태생적인 한계를 직시하는 일이고, 이 공개적 표현이 항상 상호적인 대화나 교류의 형태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며, 남을 의식하기보다 결국은 스스로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려 글을 쓰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혼자 하는 것이니까, 가치는 스스로 찾고 의미도 스스로 부여해야 한다. 내 경우 본 영화나 읽은 책에 대해 혹은 그날그날의 일상에 대해 기록하는 건 일단 매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흘려보내지 않으려 노력하기 때문이 먼저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그다음이다. 그러니까, 피드백이라는 게 있으면 좋고 감사한 것이지 그걸 매번 기대하면서 글을 쓰는 건 글 쓰는 일을 오래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다.
얼마 전부터, 아니 몇 달 전부터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라고 (까먹지 않는 한) 거의 모든 글의 하단에 적어놓기 시작했다. (구독자 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의 전후로 유의미한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결론은 글 쓰는 일은 어디까지나 혼자의 일이다. 1인분의 글쓰기. 다만 쓰는 행위 자체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찾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찾는 중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모든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소홀히 보내지 않기, 어떤 현상과 화두에 대해 조금 더 오래 숙고해보기, 당장은 쓸모나 가치가 없을지라도 훗날 이 기록들이 누적되어 역사가 되리라 믿기. 그리고, 영화를 대하는 나만의 관점,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최선의 (영화가 남긴 질문에 대한) 해석을 찾아내기. 어쩌면 정답 같은 건 평생 만나지 못할 것이지만, 좋은 답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있을 거라 믿어본다. 쓰기 전에 생각하는 과정, 쓰면서 생각하는 과정, 쓰고 나서 생각하는 과정.
*신세계아카데미 겨울학기 영화 글쓰기 강의: (링크)
*4주 영화 글쓰기 클래스 <써서 보는 영화> 11월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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